[분석] 외환시장 안전판이 흔들린다···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붕괴 촉각
4년간 최저 외환보유액 4132억 달러 안전자산 선호 중동 불안에 ‘강달러’ 환율 1400원 터치→당국 개입→안정 “외환 4000억 달러 마지노선 지켜야”
외환시장 안전판이라 불리는 외환보유액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강세에 환율 변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이 외환보유액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한 달 새 60억 달러(8조1600억원)가 줄었다. 미국의 금리 인하시기가 연말까지도 미뤄진다면 원화 절하를 막기 위해 당국은 달러 매도 개입을 지속해야 하고 이에 따라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 달러마저 깨진다면 시장 불안은 불 보듯 뻔해진다.
7일 여성경제신문이 외환보유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외환보유액(약 4132억6000만 달러)은 지난 2020년 6월(약 4107억5000만 달러) 이후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보유액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이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4회 연속 이어가면서 환율이 1444원까지 치솟았던 당시보다 더 적은 수준이다. (2022년 10월, 약 4140억 달러)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4년 4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32억6000만 달러로 전월 말(4192억5000만 달러)보다 59억9000만 달러가 줄었다. 한 달 새 약 60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이 같은 외환보유액 감소는 강달러에 따른 환율 상승에 기인한다.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17개월 만에 1400원 선을 터치했다. 당시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어서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공식적으로 구두 개입했다. 개입을 단행한 오후 2시 55분께 이후 환율은 1390원대 초반으로 하락하더니 이후 환율은 1360원대까지 밀렸다. 이날 오후 4시 9분 하나은행 고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60.50원이었다.
당국의 개입 이후 미국 고용시장 지표의 둔화가 확인되고 달러화 강세도 비교적 둔화하면서 원화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경제 지표나 연준 관계자의 발언에 따라 쓴맛과 단맛을 오가면서 그때마다 주식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지표 나올 때마다 연준 발언마다 요동
노동시장 둔화에도 소비 지출은 여전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4월 비농업 고용은 전월 대비 17만5000명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인 24만명을 하회했고 이는 6개월 만의 최저치다. 또 실업률은 시장 예상치(3.8%)를 상회한 3.9%를 기록, 가장 주요한 지표인 임금 상승률(시간당 평균 임금)마저 전월 대비 0.2%, 전년 동기대비 3.9%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각각 0.3%, 4.0%)를 소폭 하회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에 미국 증시뿐 아니라 한국 증시도 날아올랐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57.73포인트(2.16%) 상승한 2734.36에 거래를 마쳤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증가하면서 외국인이 1조1159억원을, 기관이 7940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1조861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처럼 미국의 물가가 전 세계 금융 자산 가격을 좌지우지한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현행 금리 수준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에 충분하며 향후 어느 시점에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발언한 영향이 컸다. 윌리엄스 총재가 구체적인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특정하지 않았지만 연준 고위 관계자가 피벗 관련 ‘재채기’만 해도 시장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들뜬다. 그러나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경제 지표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노동시장 둔화, 신용시장 위축, 광의통화(M2) 감소 등이 발생하고 있으나 소비지출 회복을 고려할 때 신용시장 위축이 경기둔화를 유도할 수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면서 “최근의 소비회복과 기업의 수요 증대 등은 인플레이션 상승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에 연준의 금리 인하 유보는 현명한 판단일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연준이 상당 기간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주식시장 대표 지표들이 사상 최고치에서 소폭 낮은 수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는 한국 입장에선 고환율과 그로 인한 외환보유액 감소로 귀결된다.
미 인플레이션 여전하면 ‘강달러’ 지속돼
외환보유액 4132억 달러 마지노선 지켜야
이번 60억 달러 감소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3%대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강달러가 지속하고 외환 실탄을 또다시 써야 한다면 남은 건 고작 약 132억 달러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한 달 만에 60억 달러를 개입을 했으니까 만약 앞으로 60억 달러씩 두 번 더 개입하면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 수준으로 내려갈 텐데 이는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라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실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투기 세력이 달러들 수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 달러를 무너뜨리면 안 되는 이유다.
관건은 미국의 연내 금리 인하 여부다. 김 교수는 “대통령 선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금리를 연내 인하하지 않으면 달러가 강세가 되고 그렇게 되면 원화는 약세가 되니까 한국의 외환 당국은 개입을 해야 하고 실탄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면서 “외환위기는 1%의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상당히 주의를 해야 하는 거니까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