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플랫폼 '라인' 뺏으려는 일본···尹정부 외교력 시험대
과기부 "네이버 영업비밀, 설명 곤란" 文정부 日 수출 규제 대응과 대조적 IT 시민단체 "국가적 TF 만들어야"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대해 라인야후 지분 정리를 요구하자 한일 외교 과제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야권과 IT 시민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해결을 주문하고 나섰다.
앞서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과 지난달 16일 두 차례에 걸쳐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라인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 자회사의 서버가 해킹돼 51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통상적이다.
라인야후 주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합작법인 에이홀딩스가 약 65%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에이홀딩스에 각각 50%씩 출자하고 있어 두 회사가 실질적인 모회사다.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주식을 인수해 독자적인 대주주가 되면 네이버는 라인의 경영권을 잃게 된다. 일본 정부가 네이버의 라인 경영권을 소프트뱅크에 넘기려고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네이버는 과기정통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과 긴밀히 협의한다면서 입장 발표를 유보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구체적 협의 사항에 관한 질문에 "네이버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어서 밝히기 곤란하다"며 "진상이 어떤지 공유가 된다면 나중에 네이버가 어떤 입장을 펼쳤을 때 진행되는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아꼈다.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 주요 목적이 자본 관계 재검토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7일 기자회견에서 "행정지도 내용은 안전 관리 강화와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을 포함한 외국 기업의 일본 투자를 촉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본건에서도 필요에 따라 한국 정부에 정중하게 설명하고자 한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작 핵심인 자본 관계 재검토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모호하면서도 부당하게 개입하는 행태로 인해 2019년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건이 회자한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된 양국 간 외교적 마찰은 일본의 '공업 소재 수출 규제'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총무성은 "보복이 아닌, 기존 수출구조의 재정비다.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분야의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실효성이 없어지자 일본은 지난해 7월 슬그머니 이 조치를 철회했다.
일본에서는 라인 이용자가 약 9600만명에 이르는 데다 주요 지방자치단체들도 행정 업무에 앱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라인이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셈이다. 일본 내에선 민감한 정보관리를 한국 기업의 시스템 아래에 두는 것이 국민감정을 건드린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질타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3일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던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입니까?"라며 "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굴욕 외교 때문에 우리 정부가 대신 뺨을 맞아야 합니까? 윤석열 정부가 데이터 패권 경쟁 시대에 일본 시장 점유율 70%의 라인을 일본에 내준다면 국민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일본 정부의 네이버 라인 지분 매각 요구 사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달라"며 "물컵 반 잔을 채웠는데 상대가 물컵을 엎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기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천명해 주십시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준비위원회는 7일 성명서를 내고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라인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2의 독도 사태’로 비화할 수도 있다”며 강력히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준비위원회는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네이버의 입만을 바라보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러운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 민간의 전문가들을 포함한 국가적 TF를 통해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의 디지털 경제에서 한 국가의 주권과 영토는 물리적인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디지털 공간과 주권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