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박물관 산책이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보고, 배우고, 느끼고, 즐거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박물관 산책 추천
후배가 뮤지컬 공연 티켓이 생겼다며 초대를 했다. 어린이날이었는데, 딸아이는 자기는 학원 숙제도 해야 하고 친구랑 약속도 있으니 다녀오라고 해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에서 하고 있는 뮤지컬 <파가니니>였는데, 신들린 듯한 기교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삶과 죽음을 다룬 내용이니 그의 작품 몇 곡은 라이브 연주로 듣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왕에 그곳에 가니 두어 시간 미리 도착해 오랜만에 박물관도 돌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금 일찍 나왔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아빠는 물론 데이트 중인 연인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이 안내판을 읽어 가며 관람을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역사 공부 일환으로 종종 데리고 왔고, 그 이후에는 한동안 걸음을 안 하다가 2021년 ‘사유의 방’ 전시실이 조성된 이후 나 역시 틈틈이 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니 박물관의 관람객이 늘어난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달 영국의 아트 뉴스 페이퍼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의 2023년 연간 관람객 수는 418만285명으로, 해당 조사에 참여한 박물관과 미술관 기준으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영국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 이어 관람객 수가 많은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연간 관람객 수가 400만명을 넘어선 것은 개관 이후 처음이며, 2022년 대비해서도 22.5% 늘어난 관람객 수라고 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박물관 방문이 즐거운 이유가 생긴 것이다. 나만 해도 작년에 아이와 상관없이 두어 번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내 경우 보통 처음은 ‘사유의 방’으로 향한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글귀를 읽으며 전시관으로 들어가 나란히 위치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난다. 앉아 있는 미륵을 바라보다가, 나를 들여다보고, 다시 미륵을 향해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갖는 나만의 입장 의식이다.
그리고선 디지털 실감 영상관으로 간다.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 있는지 살펴보고 화면 앞에 앉아 영상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는 올해 초 복도 중앙에 설치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디지털로 재현된 원석 탁본과 한 줄씩 짚어 설명해 주는 문구들을 한참 동안 서서 읽었다. 중국에 있는 6.39m의 비석을 4면 그대로 재현했다는데 크기 자체가 압도적이다.
그다음으로는 기획전이 열리는 곳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기증관으로 가서 새롭게 전시된 기증 작품들을 감상했다. 박물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뮤지엄 샵도 들른다. 2022년부터 ‘뮷즈(뮤지엄 굿즈)’라는 브랜드로 젊은 세대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는데 반가사유상과 금동대향로 관련 상품 등이 인기가 많다.
작년 매출액이 149억원이라고 하니 뮤지엄 샵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번에도 호기심에 들러 봤더니 나전칠기와 꽃 그림을 소재로 제작한 캐스티파이의 휴대폰 케이스가 출시되어 소개되고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우선 박물관 앞 ‘열린마당’에 서서 박물관의 정원을 내려다보거나 멀리 남산까지 조망하며 서울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시간이 되면 박물관 아래쪽 ‘거울못’으로 내려오기도 하는데 특히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봄의 연못가는 그 어떤 곳보다 최고의 산책로가 된다.
나를 초대한 후배도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거울못 옆으로 조성된 ‘석조물 정원’에 다녀왔다며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석탑과 석불들을 모아놓은 곳인데, 마침 비가 와서 그런지 석조물의 장식과 글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거울못 앞에서 차 한잔 마시며 바람을 쐬다가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공연 전 두어 시간 길지 않게 돌았는데 명상도 하고, 새로운 작품도 보고, 쇼핑에 산책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박물관과 고미술도 이렇게 흥미로운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니, 이 역시 ‘K-CULTURE’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유물과 그것을 더욱 의미 있게 드러내 보이는 재능들 말이다.
마침 5월 말까지 열린 문화공간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방문을 독려하는 ‘2024 박물관 미술관 주간’이 전국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고 하니 조금 더 시간을 내서 거닐고 즐기는 경험을 더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