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한번 하기 어렵네"···가정의 달에 먹거리 물가 '천정부지'
지난달 외식 물가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 채소, 과일 등 원재료 값 천정부지로 올라 먹거리 인상에 정부, 식품·외식업계 대표 소환
#.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김모 씨(38)는 치솟는 외식물가가 부담이라며 “김밥이 한 줄에 5000원이라니 집에서 밀키트나 간편식으로 재료 사서 만들던지 해야지 밖에선 안 사먹어야겠다”고 말했다.
#.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박모 씨(42)는 다가오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 외식이 잦아질 시기이지만 외식비에 선물까지 마련해야 할 생각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박씨는 “마음 같아선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라고 하고 싶은데 배달이며 외식이며 안 비싼 게 없다”며 “어버이날도 있어서 부모님 용돈을 챙겨드려야 하는데 올해는 외식을 하지 않고 차라리 용돈을 조금 더 얹어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외식 수요가 높고 다른 달에 비해 지출이 많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은 닫히는 분위기다. 이달 들어 햄버거, 피자, 치킨, 김밥, 냉면 등 외식 품목 가격이 일제히 인상하면서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밥·냉면 등 가격 전년비 최대 7%↑
원재료 값 올라 자영업자 부담 심화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2.9%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연속으로 3.1%에 머물다가 석 달 만에 2%대로 둔화한 흐름이지만 체감물가에 가까운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3.5% 상승했다.
특히 지난달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냉면, 김밥 등 대표 외식 품목 8개의 서울 지역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최대 7%대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기준 김밥 한 줄 가격은 평균 3323원으로 1년 전보다 6.4% 올랐다. 짜장면은 전년 동기 대비 3.9% 오른 7609원, 냉면 한 그릇은 7.2% 오른 1만1472원을 기록했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영업을 재개한 서울 종로구 ‘을지면옥’은 평양냉면 가격을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2000원 인상했다. 서울 영등포구 ‘정인면옥’은 올해 초 냉면 가격을 1만3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1000원 인상, 서울 마포구 ‘을밀대’는 냉면 가격을 올해 초 1만5000원에서 1만6000원으로 올렸다.
외식비 상승세 요인으로는 농산물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이 꼽힌다. 신선채소는 작년 동월 대비 12.9% 올랐다. 사과(80.8%)와 배(102.9%)를 중심으로 신선과실은 38.7% 상승하면서 3월(40.9%)에 이어 40% 안팎의 오름세를 유지했다. 특히 배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5년 1월 이후로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재료비 상승에 자영업자 부담도 심화되고 있지만 쉽사리 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순대국밥집을 하는 최모 씨(56)는 “전에 비해 재료값이 2배 넘게 올랐는데 가격을 올리면 손님들이 비싸다고 오지 않을까봐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맥도날드·피자헛 등 외식업체 가격 인상
농식차관 "물가 안정 협조해 달라"
당분간 외식 값 고공행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재료비는 물론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외식업계에선 줄줄이 가격 인상에 돌입했다.
맥도날드는 이날 16개 메뉴 가격을 평균 2.8% 인상했다. 이번 가격 인상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6개월 만이다.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 제반 비용 상승으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피자헛도 이날부터 갈릭버터쉬림프, 치즈킹 2종의 프리미엄 메뉴 가격을 약 3%씩 인상했다. 앞서 피자헛은 지난해 6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을 들어 가격을 인상한 바 있으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고객 품질 만족도 향상을 이유로 들어 또 가격 인상에 나섰다.
굽네치킨은 지난달 2년 만에 주요 치킨 메뉴 가격을 1900원씩 인상했고, 파파이스는 치킨‧샌드위치‧디저트‧음료 등의 품목 가격을 평균 4% 올렸다.
총선 뒤 식품 및 외식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이날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외식 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한훈 차관 주재로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물가안정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17개 주요 식품기업과 10개 외식업계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정부와 업계는 국내 가공식품 및 외식 물가 여건과 동향을 점검하고 물가안정을 위한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한 차관은 "국제금리 변동성 확대,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부문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할 우려가 있다"며 "식품·외식업계에 녹록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조 혁신, 기술 개발 등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등 물가안정을 위해 적극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 인상을 자제했지만 원재료 값이나 인건비 등이 크게 오르며 가격 인상 요인이 산재해 있었다”며 “적자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맹점주들도 수익이 나야 하지 않겠느냐. 정부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억누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품업계의 경우 정부 압박 속에서 가격 인상 눈치 싸움을 하는 모양새다. 통상 업계 선두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경쟁사들도 가격을 올리는 게 수순이기 때문이다. 롯데웰푸드는 코코아 가격 상승에 따라 다음 달 빼빼로, 가나 초콜릿 등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했으나 가정의 달인 점을 고려해 오는 6월부터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동원F&B와 CJ제일제당은 김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