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는데

[송미옥의 살다보면2] 직행버스 매진으로 완행 타고 동대구서 안동행 같은 요금에 시간은 두 배···만족도는 생각 나름 주차비 아끼려 골목에 세워둔 차 백미러가 덜렁

2024-05-05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가끔 타게 되는 완행버스는 시골길 구석구석 시골 투어를 하듯 재미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른 오후인데도 동대구서 출발하는 안동행 버스표가 매진이다. 주말엔 예약이 필수인데 깜박했다. 북대구를 달려가니 거기도 같은 상황, 그러나 요금은 같지만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돌고 도는 완행버스 좌석이 다행히 남아있다. 세 시간이 걸려도 타야 할 상황이다. 몇 년 전에도 완행을 타게 되어 난감해할 때 모든 것은 생각 나름이라던 버스 기사의 농담이 생각나 창밖으로 꽃구경도 할 겸 승차했다.

“같은 요금 내고 누가 이리 큰 차를 오래 태워 준대요? 허허.”

버스는 네 곳의 중소도시를 정차하는데 젊은 손님도 있지만 거의 외국인 노동자와 노인들이다. 운전석 바로 뒤에는 80대가 훌쩍 넘은 작고 초췌한 두 할머니가 앉았다. 두 분 다 혼자 사시는 것 같다. 대화로 보아 초면인데도 친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디 가는가부터 입은 옷까지 세세하게, 그러나 혼잣말 같은 대화다.

 독거노인의 수가 많아지는 이 시대에 혼자서 놀 줄 알아야 외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배고픔의 시대를 지나 오래 살기에 해결해야 하는 정신적 허기의 단면이다. 외로움과 고독함을 등 가방에 메고 아픈 다리를 끌며 시장을 기웃거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다. 두 분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외로워 못 살겠으니 여러 명이 같이 산다는 교도소라도 보내 달라던 한 노인의 ‘시’가 생각난다.

중년의 기사님이 살짝 화난 말투로 한마디 하신다.

“할매요, 이야기하려면 맨 뒤로 가서 앉으소.”

“아이고, 다리도 아프고 멀미 나서 안 돼. 조용히 할 꺼이.”

그러더니 소곤소곤 다시 대화를 이어가신다. 그 뒤에 앉은 나에게도 예민하게 들린다. 옆 좌석 손님은 리시버를 귀에 꽂고 앉자마자 수면 모드다. 기사님은 잔소리 대신 라디오를 튼다. 다행히 한 시간을 달려 첫 도착지인 상주에서 두 분 모두 내리셨다. 투박하지만 부모님 생각하듯 어른을 대하는 그의 염려가 따뜻하다.

“조심조심 천천히 내리소.”

그런데 하차해야 할 승객 한 명이 그곳에서 안 내린 것 같다. 정류장 버스표 집계로 확인하나 보다.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인 그의 억양이 더 투박하고 높아졌다.

“상주, 상주 내리소. 상주.”

가끔 버스비 아끼려고 전 정거장 요금을 끊고 종점까지 가는 손님도 있단다.

“이제부터 내리실 때 영수증 보여주고 내리소.”

정차하는 정거장마다 내리는 이들의 차표 검열이 시작되었다. 완행버스에서만 가끔 있는 소동이란다. 졸다가 후닥닥 내리던 손님은 주머니를 뒤지며 당황한다.

마지막 종점인 안동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어른 다섯 명에 젊은이가 몇 명 있다. 누군가가 검열에 걸려 창피를 당하면 어쩌나 불안하긴 해도 기사의 성품으론 그냥 눈으로만 나무라실 것 같다.

수고한 기사님께 감사 인사는커녕 영수증 검열을 무사히? 통과하고 세워두었던 내 차에 오니 젠장··· 한쪽 백미러가 깨져 덜렁거린다. 주차비 아끼려고 터미널에서 한참 떨어진 좁은 골목길에 세웠더니 이런 낭패가 있나. 오천원 아끼려다 바가지 쓴 꼴이다. 범인(?)을 잡으려고 블랙박스를 보니 그것도 배터리 아낀다고 꺼져 있다. ‘나이 들어 왜 저리 청승을 떨며 살까‘ 남들 보고 구시렁거렸는데 내가 더 궁상을 떤 격이다. 그래도 이건 아깝다. 너어~무 아깝다.

“제발 곱게 늙읍시다, 송여사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