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운동을 돈 주고 배운다고?

[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어린 시절 시골서 자란 나는 운동을 스스로 터득했다 자전거 타기, 줄넘기, 개헤엄조차도

2024-05-14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아주 오래전, 결혼을 앞두고 수영장에 등록했다. 허리 잘록하고 배가 쏘옥 들어간 이쁜 몸매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아름다운 몸을···. 기초반에 등록했다. 수영복, 수모, 수경을 갖추고 내 생애 처음으로 수영 코치를 만났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누군가에게 운동을 배운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돈 주고 운동을 배운다고?

난생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코치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페달이 발에 닿지 않는, 내 키에 맞지 않는 아버지 자전거를 몰래 탔었다. 자전거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 “어어어~~~” 소리치다가 길옆 미나리꽝으로 자전거를 탄 채로 처박았다. 얼굴은 두꺼운 진흙으로 피에로 화장을 했고 노출된 팔다리는 본의 아니게 머드 팩을 했다. 내 몸을 다치지 않았나? 하는 걱정보다 아버지 자전거가 고장 나지 않았을까 염려되어 자전거부터 살폈다. 진흙으로 뒤덮인 자전거를 세우면서.

그럴 때마다 아버지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제 자리에 갖다 두었다. 그땐 다쳐도 다쳤다는 소리도 못 했다. 다리를 다치면 며칠 절뚝거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았다. 손등이나 팔꿈치에서 피가 나면 주위에 있는 흙을 상처 부위에 살살 뿌렸다. 어느 순간,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져 나가고 흉터가 남았다. 그런 아픔을 반복하면서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내리막길에서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휘파람을 불 수도,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쓸어올리면서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타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있었다.

자전거 타면서 두 다리를 들고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면 저절로 노래가 나올 정도로 신났다. /픽사베이

줄넘기도 혼자서 배웠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줄넘기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 했다. 천천히 줄을 앞으로 넘기면서 줄이 땅바닥에 닿으면, 순간 두 발을 모아 공중으로 올리고 줄을 엉덩이 쪽으로 보내면 성공이었다. ‘슬로비디오’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다가 속도를 빨리하면 발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땅바닥에 닿고 자연히 팔은 쉴 새 없이 줄을 앞뒤로 반복해서 돌렸다.

그렇게 연습하던 어느 날. 줄넘기 선수가 되어있는 나를 보았다. 한쪽 발을 들거나 두 팔을 X자로 꼬면서 스스로 줄넘기를 할 수 있었다. 제일 난도가 높은, 연속으로 두세 번식 빠르게 뛰어넘는 줄넘기를 하다 보면 돌멩이가 튕겨 나가기도 하고 헐렁한 신발이 벗겨지기도 했다. 친구들끼리 누가누가 잘하나 시합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아랫마을에 사는 영숙이 집까지 줄넘기를 하며 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스스로 운동을 익혔다. 달리기할 때 다음 선수에게 배턴 건네는 방법 정도는 선생님께 배웠을까? 아! 농구는 확실히 선생님께 배웠다. 규칙이 있었다. 공을 가진 상태에서 몇 걸음 이상 움직이면 안 된다. 링 안에 공을 넣으면 2점을 얻는다는 등등은 담임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농구공이 어찌나 무거운지 들고 있는 것보다 드리블하는 것이 편했기에 공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같이 한 농구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10분 정도 뛰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내 키가 160cm 정도로 큰 것은 농구 덕분인 것 같다. /픽사베이

농구공과 내 손과 몸이 박자를 잘 맞추어 슈팅에 성공하면 기분이 진짜 좋았다. 운 좋게 3점 슛이 들어가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칭찬 한마디 해 주시면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그리고, 재미있고 시원한 스포츠(?)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개헤엄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수영이라는 고상한 이름은 알지 못했다. 시냇물 속에 엎드려 사정없이 발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어떤 이유로 물속에 고정된 팔이 뜨면 몸이 부웅 떠서 조금 앞으로 나갈 때도 있었다. 팔은 물속에 고정되어 있고 다리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물차기를 우리는 개헤엄이라 불렀다. 

더운 여름이면 하굣길에 어김없이 냇가로 첨벙 뛰어들어 개헤엄도 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친구에게 물세례를 주는 물싸움도 했다. 팔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팔 왼팔을 교대로 들어 올리면서 물을 가르는 수영은 보지 못했다. 누구 하나 수영이라는 고상한 단어나 수영하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 모두 개헤엄으로 만족했다.

수영이란 낱말을 모르니 수영복, 수경, 수모 이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나는 정말 순진무구한 시골 촌뜨기였다. 내 또래 시골 친구들은 그렇게 자랐다.

이쯤에서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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