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60엔 고환율 ‘속으론 싱글벙글’ vs 솟구치는 원/달러 환율 자본유출 공포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일본 정부 외환 시장 개입 안 해 日 내수경기 중시 수출 경쟁 유리 시장 개입으로 1400원 막아선 韓 외환보유고 190억달러 한계 ‘불안’ ‘고환율→자본유출’ 외환위기 우려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했다. 강달러 영향이다. 환율이 달러화 대비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금융위기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지만 일본에겐 ‘낫 배드’다. 국제 통화인 엔화는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자본유출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출 가격 하락에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만 관리하면 된다는 말이다.
일본 걱정할 것 없이 강달러는 한국에 치명적이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자본유출과 고물가를 견인한다. 1400원까지 올라선 환율은 정부가 개입해 가라앉히고 있지만 문제는 외환 실탄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외환시장에 개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수출을 늘릴 기회이고 물가만 안정이 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일본은 고환율 상황을 ‘엔조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9일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엔저 상황을 이같이 평가했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오전 장중 160엔을 넘어섰다가 오후 157엔에 머물렀고 155엔대까지 하락했다. 지난주 심리적 마지노선인 155엔을 넘어선 이후 환율은 저항 없이 상승했다. 일본 매체는 이날 환율 급락에 일본 금융당국의 개입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6일 기준금리 동결 발표 직후 '155엔에 환율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우에다 총재는 엔저가 금리 인상 결정에 무시할만한 수준이라고 밝힌 만큼 김 교수는 극심한 초엔저가 일본 경제에 큰 위험신호는 아니라고 봤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하면 ‘제2플라자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엔 약세는 미국에 대재앙이다’라면서 3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엔화 가치가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엔화 절상을 압박하기 위한 두 번째 플라자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인 사건을 말한다. 엔저(이전까지 1달러 당 360엔~270엔)에 따른 수출 호황으로 오랜 기간 경제 성장을 누렸던 일본은 이 합의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엔화는 국제통화이기 때문에 환율이 높아져도 일본이 외환위기를 당할 염려가 없습니다. 단지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문제인데 너무 높아질 것 같으면 그때 가서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됩니다. 혹시나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환율을 낮추지 못한다면 미국과 공동으로 개입하든지 과거 플라자 합의로 환율을 안정시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초엔저, 즉 일본의 고환율이 일본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한국입니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자본유출을 유발한다.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이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현재 고금리 상황에서 환율은 상승하고 있고 여기에 원유 가격까지 올라가면 물가가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고 부동산 버블이 꺼질 위험도 있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는 심각해질 것이고 이자 부담을 못하는 가계 부채도 늘어날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환율에 반영이 돼있는데 금융당국이 개입을 안 했으면 당연히 원/달러 환율도 1400원선을 넘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환보유고 열어 고환율 막아선 당국
강달러에 4000억달러선 깨지면 ‘불안’
당국이 환율을 1400원선은 막기 위해 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풀어 낮추고는 있지만 이 또한 문제는 있다. 4000억달러 수준이었던 외환보유고는 현재 3000억달러 진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무너뜨린다.
“최근 외환보유고가 4190억달러(한국은행 3월말 기준, 4192억5000만달러)였기 때문에 190억달러 이상 개입하면은 3000억달러 수준으로 내려가잖아요. ‘실탄이 부족하다’는 심리적으로 불안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190억달러밖에 못 쓰니까요. 4000억달러 선이 깨지면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한국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본지가 한국은행 외환보유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2022년 3월)한 이후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우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할 때마다 환율이 요동쳤는데 당국의 ‘개입’으로 환율 상승 압력을 낮췄다. 2년 전인 2022년 3월 외환보유액은 4578억달러였고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로 치솟았던 당해 10월에는 4140억달러까지 급감했다. 1년 전인 2023년 3월 4261억달러로 반등했지만 강달러 역습에 지난 3월 4100억달러대로 하락했다.
환율이 1370원대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1444원을 기록했던 때와 외환보유고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고 당국은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 3월보다 4월 외환보유액은 이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 교수는 엔화가 800원선 밑으로까지 하락하면 한국의 수출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과거 사례로 보면 원/엔 환율이 800원 선 밑으로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결국 일본과의 수출 경쟁력에서 뒤지게 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라자 합의를 다시 꺼내든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엔/달러 환율이 160엔까지 치솟았던 순간 864원까지 하락했다. 이후 155엔대로 하락하자 886.54원을 기록했다.(하나은행 고시 오후 4시 53분 기준)
이 시각 엔/달러 환율은 155.59엔을 기록했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원 오른 1377.0원에 마감했다. 한때 원/달러 환율은 1384.4원까지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