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함께 태평양을 바라보다
[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 (24) 고치현(高知県),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 태평양을 바라보는 해변, 가츠라하마(桂浜) 고치현의 쇠고기, 도사 아카우시(土佐あかうし)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을 가다
이번 여행지는 일본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역사 속의 인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 고치현(高知県)이다. 최근에 읽은 <녹나무의 파수꾼> 196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坂本龍馬. 1835~1867.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정객. 막부시대를 종식하고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혁신적인 사람을 칭송하는 장면에서, 책의 내용을 빌리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거론되곤 한다.
'기존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금기에도 차례차례 도전해서 야나기사와 그룹의 사카모토 료마라고도 하지요.'
금강산도 식후경, 나에게 고기를 달라
이번 여행에서는 고치성(高知城)과 가츠라 해변(桂浜)을 산책할 예정이다. 고치성으로 가기 전에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히로메 시장'을 찾았다. 전날 일정이 에히메현(愛媛県)을 도는 것이었는데, 명물 요리를 먹다 보니 해산물 요리만 먹어서 한시라도 빨리 고기를 먹고 싶어서였다.
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 조금 발길을 옮기니 술잔을 앞에 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정도구나 싶었다. 고치현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술을 잘 마신다고 한다. 옛날부터 여자들의 생활력이 강해서 남녀 차별도 심하지 않았다고. 이 동네 참 좋다, 싶었다. 문득 친구들과 이곳에 오면 서너 시간은 거뜬히 잘 마시며 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고기 요릿집을 찾아야 한다. 설마 이곳에도 해산물 요리만 잔뜩 있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안 가서 스테이크 집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도 가득하다. 일단 마음속에 저장해 놓고, 더 좋은 곳이 없는지 시장 구경도 할 겸 둘러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딱히 들어가고 싶은 가게는 없었다. 지금 당장 입에 넣고 싶은 것은 '고기'였기 때문이다.
처음 봐 둔 스테이크 집은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어서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고치현 특산 소고기(土佐あかうし/도사 아카우시) 스테이크 150g을 주문했다.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살 것 같았다. 레드 와인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복의 시간이었다.
셰프에게 하도 해산물 요리를 먹었더니 고기가 먹고 싶어서 들어왔다고 하니 종종 나 같은 손님들이 있단다. 어떤 미국인은 아내의 친정 방문길에 시코쿠 일주 여행에 나섰는데 명물 요리들이 다 생선 요리여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우는소리를 했단다.
그 미국인이 뭘 주문했는지 알겠느냐며 퀴즈를 내신다. 저처럼 스테이크 아니냐고 했더니 햄버거였단다. 역시 미국인의 소울 푸드는 햄버거인가 보다고 웃었다.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먹었던 그 손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단다. 그 미국인 마음에 격하게 공감한다.
자, 고치성으로
이제 배도 채웠으니, 시장이 있는 길 건너편에 있는 고치성(高知城)으로 가보자. 에도시대 이전에 세워진 성 중에 천수각(天守閣)이 보존된 성은 일본 전국에 12개밖에 안 되는데, 고치성은 그 중의 하나다.
도요토미(豊臣) 집안을 누르고 전국 통일을 달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이제 평화로운 시대가 왔으니 각 지방에 성은 하나로 족하다. 다른 성들은 남겨 둘 필요가 없으니 헐어서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정책으로 인해 전성기에는 천수각을 보유한 성이 3000을 넘었었는데 확 줄었다. 그 후 다시 긴 세월이 흘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겨우 12개밖에 안 된다고.
덧붙여 설명하자면, 천수(天守)라는 것은 성곽 안에 세우는 상징적인 건물로 권위와 군사력을 과시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성 내부의 대부분은 주거 공간의 기능은 없었고 창고 등으로 쓰였으며, 유사시에는 사령탑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고치성은 천수각뿐만 아니라, 번주(藩主)와 그 가족 그리고 신하들이 지내던 사적인 공간인 '혼마루 어전(本丸御殿/혼마루고텐)'까지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성으로도 유명하다.
성으로 가는 길도 산책하기에 딱 좋은 길이었다. 보도를 장식해 놓은 타일도 이쁘고, 나무 아래 테이블에 앉아 바둑을 두는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 또한 여행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하여 반가웠다.
살아남은 천수각에서 성주는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슬슬 걸어 천수각 꼭대기까지 올랐다. 눈 앞을 가리는 건물들이 없어서 시원하다. 저 멀리 산 능선이 보이고 그 앞으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옛날에는 더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었겠다고 상상하며, 또한 이곳이 유사시에는 사령탑으로 쓰였었구나 했다.
어쩐지 성의 계단이 급하게 경사지고 한 단 한 단이 높다 싶었더랬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보다 키가 작았을 텐데 왜 성의 계단들이 하나같이 경사가 격하고 높은지 궁금했더랬다. 만에 하나 적이 성안까지 쳐들어왔을 때 빨리 올라오지 못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드디어 사카모토 료마가 사랑한 가츠라하마(桂浜)로
고치성을 본 후 사카모토 료마가 사랑해 마지않았다는 경치를 보기 위해 가츠라해변으로 이동했다. 여행 안내지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실제로 보고 싶었더랬다.
우선 태평양을 향해 서 있는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이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와 나란히 서서 태평양을 바라본 다음 서둘러 내려와 해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선 백사장이 먼저 눈에 띄고 멀리 바위 끝에 사진에서 본 와타츠미 신사(海津見神社)가 보였다. 신사까지 걸어가는 길은 잘 정비가 되어서 모래 위를 걷지 않아도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천천히 모래 위를 걸어서 가고 싶었지만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정비된 길을 서둘러 걸었다.
비록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의 조화는 아름답기만 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아름다웠을 테지만 말이다. 자그마한 신사가 있고 그 앞에는 광활한 태평양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치성의 또 다른 표정
어찌어찌 비 세례는 받지 않고 관광을 마칠 수 있었다. 호텔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마치고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라이트업 한 고치성을 보러 나섰다. 핑크색으로 빛나는 고치성을 멀리서 바라보며 저것이 낮에 본 그 성이 맞나 싶었다. 보고 있는 방향이 달라서인지 같은 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운명처럼 찾게 된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지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동네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서 산책에 나섰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 오토바이도 승용차도 택시도 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었다. 그런 여행지에서 나 홀로 타임. 10월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두리번두리번 동네 구경을 했다.
길가에서 '사카모토 료마' 벤치를 발견했다. 과연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답다. '도사 유신 역사 문화의 길/ 사카모토 료마 탄생지'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오른쪽에는 탄생지를 알리는 기념 비석도 있다.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발견에 잔잔했던 아침 산책에 생기가 돌았다. 사진을 찍으며 서성이는 사이에 날이 밝아왔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사카모토 료마였지 싶다. 그의 고향에서 아마도 그가 적대시했었을 성주가 살았던 성에 올라가 보고 그가 사랑한 가츠라 해변에서 그의 동상과 나란히 서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연히 그의 탄생지에서 '사카모토 료마 벤치'에 앉아 탄생지임을 알리는 비석과도 대면했다. 조금은 친근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