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은퇴를 그리는 직장인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을 포기하고 자유를 택하다

2024-04-18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은퇴를 그릴 것이다. 그러나 생각에만 그칠 뿐이고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도 은퇴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름 준비했다고는 하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두려움이 늘 발목을 잡곤 했다.

이런 나에게 용기를 준 책이 있다. 어느 미국인이 단순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은퇴를 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직 여류 변호사가 스무 살 때 아프리카의 한 작은 마을로 봉사를 하기 위해 떠났다. 그곳엔 수도, 전기, TV, 카메라 등 문명의 이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이었다. 400여명의 주민들은 몇 개의 오솔길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 있는 수수한 진흙 움막에서 살았다. 마을 통틀어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 더군다나 저자가 방문한 해는 7년 동안의 가뭄이 시작된 해였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생의 어떤 일도 그때의 일만큼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보다 유쾌하고, 활발했으며, 정다운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 때나, 들판에서 일할 때나 항상 웃고 노래하며 즐거워했다. 어디서나 웃음이 넘쳐흘렀다. 그 마을에서는 배를 잡고 웃지 않고는 15분도 견딜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풀었고 곧 웃음이 뒤따랐다.

물론 그곳 작은 마을의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영양실조와 피부병과 기타 질병으로 고생했다. 언젠가는 죽어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 마을에는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주민들은 어느 사람들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결혼하며 예의 미국인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항상 시간에 쫓기고 바빴다. 10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며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변호사 일을 접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사례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TV에 방영되었다. 좀 더 쉽고, 좀 더 빠르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조건들. 이를테면 휴대전화, TV, 자동차가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험에 참여했던 주인공들은 자동차 없이 살면서 의외로 그동안 잊어버렸던 산책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편리함을 버리자 사람이 보였던 게다.

시간이냐, 돈이냐 /게티이미지뱅크

위의 변호사 사례도 그렇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자 그에게 내적인 평화가 왔다. 풍요로움보다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삶을 살면서 느끼지만 많은 걸 동시에 얻을 순 없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편리함을 추구한다면 자동차 공해 속에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좋은 환경을 원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치다.

직장에 다니며 퇴사를 고민할 때는 두려움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사표를 내자 마음이 편해졌다. 직장에서 퇴직한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실로 향했다. 한동안 그곳에 다니며 보고 싶었던 책을 실컷 보았다. 직장생활을 계속했더라면 돈은 좀 더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자유는 얻을 수 없으리라.

일찍이 벤저민 프랭클린이 시간은 돈이라고 했다. 시간의 중요성을 돈처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하다. 돈이야 노력하면 벌 수 있지만 시간은 원한다고 더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퇴직하고 보니 검소하게 살기를 택한다면 노후 자금 그리 많지 않아도 된다. 돈을 벌기보다 소비수준을 낮추면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