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요양시설] ③ "저는 엄마가 17명이에요"
소수 정예 '함춘너싱홈' 간호사 출신 최종녀 원장 "제 돌봄 철학을 믿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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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부담 주기 싫다 어디 좀 알아보거라." 맞벌이 600만 가구 시대가 도래했다. 부모를 끝까지 모셔야 한다는 건 옛말이 됐다. '요양시설 보내는 건 고려장'이라는 말도 지금 시대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이왕 보내드리는 거 편하고 좋은 곳이 낫지 않나. 요양원이 뭔지 요양병원은 또 뭐가 다른지. 실버타운은 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이렇게 '핫'한지 여성경제신문이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했다. 요양시설 돋보기 '줌(zoom) 요양시설' 지금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밥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중증 치매 노인일지라도 콧줄을 끼우지 않는다. '어르신의 잔존가치를 늘려야 진짜 장기요양'이라는 최종녀 함춘너싱홈 원장의 철학이다. 무조건적인 도움 제공이 아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조·지원을 해야 한다고 그녀는 힘줘 말했다. "우리 요양원 문턱을 넘으면 이때부턴 우리 가족인 거예요. 보호자님의 가족이 아니죠." 이 시설은 17명만 생활하는 '소수 정예' 요양원이다. 입소자 모두를 자신의 시어머니, 직원들은 시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최 원장을 여성경제신문이 만나봤다.
함춘너싱홈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했다. 치매, 중풍 등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이다. 17명 정원의 소규모 요양시설인 점이 특징이다. 20여 년 이상의 간호사 경력을 가진 노인 전문가 최종녀 원장이 2018년도에 설립했다. 일상생활에서 24시간 지속적인 간호사의 관리가 필요한 노인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너싱홈에선 사회복지사 2명, 간호사 1명을 두고 간호와 운동처방사로서 제공하는 운동 요법, 여가생활까지 원스톱(One-Stop)으로 누릴 수 있다.
16일 함춘너싱홈에서 최 원장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함춘너싱홈은 어떤 곳인가요.
"현재 16명의 어르신이 2인 1실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르신 평균 연령은 90대입니다. 1명의 요양보호사가 2명을 보살피고 있어요. 보통 간호사 1명이 25명, 사회복지사 1명이 100명을 보는 게 기준이지만 저희는 간호사 1명과 사회복지사 2명이 17명의 어르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1인실과 2인실 모두 일 1만5000원으로 월 120만원이에요. 어르신 60%가 치매 말기고 나머지는 초기 치매를 앓고 계세요. 보통 3~4년 정도 이곳에서 함께 생활했어요.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는 거의 걷지도 못하셨는데 지금은 두 분을 제외하고 모두 걸으세요. 안전바를 잡고 20분간 서있기, 앉기, 걷기 훈련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거죠."
-다른 요양원과 다른 너싱홈만의 장점은 무엇이며,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면.
"자식 입장에서 부모님을 어떤 곳에 맡기고 싶어 할까요. 아침·점심·저녁밥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켜 주며 부모를 그저 기계적, 형식적으로 다루는 곳이 아닌 마음을 담아 케어해주는 곳을 선호할 수밖에 없죠. 여기에 더해 인격적으로 원장의 철학이 담겨 운영하는 곳이라면 누가 걱정하겠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에요. 일대일 맞춤형으로 어르신을 돌봐야 하죠. 치매든 와상이든 잔존기능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잔존기능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케어해 주는 것이 필요해요. 걷지도 못하던 분들이 오셔서 걷게 되고 산책하러 나가시는 것을 볼 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껴요."
-함춘요양원 입소할 때 다른 요양원과 다른 포인트가 있다면.
"보호자 분이 어르신을 모시고 요양원에 방문하면 저는 딱 한 마디를 해요. "이 문을 지나면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닙니다. 이제 어머님 아버님은 우리 가족입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돌봄 영역 자체가 진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론적인 형식적인 돌봄은 오히려 어르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양원과 요양병원 차이를 아시나요. 병을 치료하는 것과 이미 병을 지닌 상태에서 남은 '잔존능력'을 유지해 주는 것. 이 차이 하나에요. 간호사는 의료 케어를 해요. 그런데 우리는 돌봄 케어를 해요. 국가 차원에서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장기요양제도'에요. 결국 병이 생겨도 남아있는 수급자의 잔존 가치를 보존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돌봄케어의 첫 번째 의무에요. 그런데 요즘 장기요양 종사자들은 의료 케어를 하려고 해요. 잘못된 거죠.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욕창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일들, 기계적인 의료 케어일 뿐이라고 저는 봐요. 예를 들어 우린 어르신 콧줄도 착용하지 않아요. 왜? 콧줄을 낀 어르신조차도 사실 잔존능력이 남아있거든요. 어르신의 잔존능력을 무시하고 콧줄을 끼운 상태로 생활을 하면 결국 남아있는 능력조차도 바닥나 병원에 가게 돼요. 장기요양제도의 목적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는 거예요. 콧줄을 끼우지 않고 남은 잔존능력을 얼마나 유지하게 시키느냐가 제가 추구하는 장기요양돌봄이에요. 함춘은 그런 곳이에요."
-의외로 고령자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까다로운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고령자를 케어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함춘에서 최고령자인 1919년생 105세 이정순(가명) 어르신은 스케치북에다 자신의 사진을 붙여드리고 "이거, 어머니 것에요!"라고 하면 정말 좋아하세요. 그림 그리시는 것도 물론 좋아하시죠. 치매라고 해서 항상 기억이 없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 가장 재미있어하는 것 등을 찾아내 활동하게 해주고 그와 관련해 말동무가 되어 드리면 치매 증상이 많이 호전된답니다. 그래서 우리 함춘너싱홈은 어르신 한분 한분의 특징과 관심 분야를 파악해 철저하게 일대일 맞춤 프로그램으로 돌보고 있어요. 어떤 분은 하루에도 열두 번 “죽겠다”며 우울증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82세 김희자(가명) 어르신은 매일 속초 얘기를 하세요. 30~40년 전 본인이 제일 행복했던 시절을 계속 얘기하시는 거죠. 저희 함춘 직원들은 김희자 어르신 생애 이야기를 이미 보호자들에게서 다 듣고 파악했기 때문에 척 하면 척 알아듣고 호응해 줘요. 함춘에 들어오신 뒤 많이 밝아지셨죠. 한분 한분의 개인 이야기를 모두 파악하고 가족처럼 주고받는 게 함춘의 비법 아닐까 싶어요."
-요양원에 '디초커'라는 장치가 층별로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요. 기도 폐쇄 환자를 위한 응급 장치인 걸로 알고 있는데, 장기요양기본법에 따르면 기도가 막히면 하임리히법을 실시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왜 하임리히법을 안 쓰고 디초커를 설치해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디초커는 기도 폐쇄 처치기에요. 어르신의 음식물로 인한 질식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죠. 기도 폐쇄(질식) 시 응급 상황 대응 방법 중 대표적인 방법은 하임리히법이지만 초고령 치매 어르신에게는 적용하기 힘들고 실시해도 효과가 없어요. 흡인기(Suction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데 준비하는 시간이 걸리죠. 119 구급대를 불러도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에요.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논문을 통해 디초커라는 기도 폐쇄 처치기를 알게 됐죠. 층별로 구비해뒀어요."
-어르신들과 가족처럼 지내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함춘에서의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번은 급체로 토하시던 어르신이 걱정스러워 출근하자마자 어르신 방으로 찾아갔어요. 어르신은 절 보자마자 "추워! 이리로 얼른 들어와"라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라 어르신 품에 폭 안겨 눕고 싶었던 적이 있었죠.
또 1921년생으로 지난해 3월 돌아가신 어르신도 떠올라요. 돌아가시기 전 퇴원하고 함춘으로 돌아오신 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저를 쳐다보고는 호흡이 가쁜 목소리로 "엄마 엄마~"하며 부르며 제 손을 잡으셨죠. 평소에도 "엄마 같다"고 자주 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렇게 부르시던 게 깊게 와닿았어요. 그날 돌봄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요양시설을 운영하기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요양업 종사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르신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갈 때 그분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아름답게 빛이 나요.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다 가시도록 돕는 일, 생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하는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한 모든 시니어 종사자가 어르신들과의 동행 속에서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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