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소프라노 박소영은 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소방수로 나섰나
뉴욕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 공연
전국에서 봄맞이 꽃 축제가 한창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든 단체 행사에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소방수가 대기하기 마련이다. 오페라 공연에서도 주역 가수가 사고 등 피치 못하게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주최 측이나 관객 모두 장기간 준비하고 고대한 공연을 취소할 수 없을 터.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주역 가수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예비, 즉 커버 가수를 미리 캐스팅한다. 명품 브랜드는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처럼, 커버 가수 역시 주역과 같은 최고의 가수가 선택되기 마련이다.
지난 3월 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Met)가 공연한 샤를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커버 캐스팅된 소프라노 박소영 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미 2022년에 서울시 오페라단의 같은 작품에서 줄리엣을 공연했고 작년 국립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를 맡은 실력파 가수다. Met의 급한 불을 꺼준 그 소프라노를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15일에 만났다.
—이번 Met 공연의 성공을 축하한다. 커버 캐스팅은 전장에 나간 애인이 살아 돌아오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공연 요청을 받은 그 순간의 감정이 어땠는지.
“보통은 하루 이틀 전에 통지하는데 내가 공연 전화를 받은 때가 공연 시작하기 딱 2시간 20분 전이었다. 귀국하려고 짐도 모두 싸 놓았기에 옷을 다시 꺼내려 캐리어를 여는데 그때부터 손이 마구 떨렸다. 그래도 주역 가수가 무대 리허설할 때 나도 무대 뒤 빈 공간에서 동선을 확인하고 계속 역할을 리마인드했기에, 정작 무대에 서니 진정이 되고 편하게 공연을 마쳤다. 특히 지휘자 야닉 네제세겡은 가수를 진심으로 우선 배려해 주었다.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정식 캐스팅과 커버 캐스팅은 마음가짐도 다를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커버 캐스팅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 된다. Met 같은 곳에서는 가수의 연습 태도를 금방 눈치채는 것 같더라. 불성실한 가수에게는 아무런 기회가 없다. (운이 작용하겠지만) 커버가 주역이 되는 것은 순간이다. 다행히 이번 공연 성공으로 여러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국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중 최고로 자리매김하셨는데, 처음에 성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어려서 노래를 좋아했는데 어머니의 배려로 일찍 성악 레슨도 받았다. 초등학교 때 경연대회에 나가서 장려상을 받았는데, ‘장려’의 의미를 몰랐던 나는 엄청 잘해서 상을 받은 줄 알았다. (부끄럽지만) 그 뒤에도 사실 1등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노래가 좋아 예술학교에 진학했고 서울대에도 들어갔다.”
—그런데 유학은 미국으로 갔다. 오페라를 공부하려면 대개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로 유학 가지 않나? 계기가 궁금하다.
“순전히 내 결정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뉴욕 그리고 로마와 빈을 잠깐씩 다녀봤는데, 그중 뉴욕이 내가 공부하기에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공연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배역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나의 노래를 세상에 알린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을 꼽아야겠다. 미국에서 활동 시 여러 오페라단의 요청으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50번도 더 불렀다. 2019년 Met에 데뷔할 때도 이 배역이었다. 아쉬운 점은 밤의 여왕은 10여 분 동안 두어 곡만 부른다는 점이다.”
—기자도 그 아리아 영상을 봤는데, 콜로라투라 기교가 대단하더라. 독자들께도 소개하고 싶다.
밤의 여왕 외에도 기자가 인터뷰 중 느낀 그의 끼와 음색을 고려해 더 매력적인 배역이 어울릴 것 같다며 몇몇 작품을 예로 들면서 물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싶다. 국내에 들어온 뒤 새로운 배역에 도전해 왔고,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주역 아디나도 올 7월에 콘서트 형식으로 노래할 예정이다.”
—공연 전 본인만의 습관이 있는지.
“공연 직전에는 내 목소리를 녹화한 리허설 자료를 보면서 계속 리마인드하는데, 공연 집중에 도움이 많이 된다.”
자신에게는 오페라가 다양한 맛집 같은 존재라며, 그는 꼭 주역이 아니더라도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무제타처럼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배역을 노래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열정과 매력 넘치는 그가 국내와 외국의 다양한 무대에서 그 개성을 마음껏 펼쳐 K-클래식을 빛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