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사과값, 재정 보조만이 답은 아냐···'수입 확대' 논의 필요"

기후 이변 막을 수 없다면 수입 늘려야 CPI 3.1% 오를 때 농축수산물 11.7%↑

2024-04-12     허아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사과값 폭등 사태를 두고 재정 보조를 통한 가격 조정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의견을 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농산물 가격 급변을 지금처럼 재정 보조로 잡을 것인지 수입을 통해 공급량을 조정해 근본적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사과값은 폭등했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사과값은 전년 동월 대비 88.2% 올랐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최대치의 상승폭이다.

사과값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는 기상 이변으로 인한 생산량 저하가 꼽힌다. 작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출하된 2023년산 사과는 약 31만5100t으로 전년 동기간 출하된 물량(46만1400t)과 비교할 때 31.7%나 줄었다. 올해 4월 이후 사과 저장량은 7만9000t으로 전년(10만3000t)과 비교하면 23.4% 적다.

재배면적도 0.4% 감소했지만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사과 생산량은 재배면적보다는 기상 여건이나 병충해 등에 더 크게 영향 받는다.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의 폭등은 소비자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월과 같은 3.1%로 1월(2.8%)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농축수산물가 상승률은 11.7%로 품목 중 가장 높았다.

앞서 금통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안착할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바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변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부터 14개월 간 3.50%로 유지되고 있다.

이 총재는 '물가 수준이 높아 고통받는 국민이 많은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통화정책은 옵션인가 아닌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기후 이변'이라는 강력한 요인이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재정 정책만으로 가격을 보조하는 방식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과실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측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이고 그중 사과의 비중은 0.23%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의 19%는 과실 가격으로, 그중 6%는 사과 가격 상승으로 설명된다. 농산물 전체는 CPI 측정용 상품묶음(바스켓)에서 3.8%만을 차지하나 최근 2~3개월 간 CPI 상승의 30%는 농산물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았다.

정부는 농산물 생산량이 줄거나 늘어 가격이 급변할 때마다 재정을 풀거나 재고를 사들이는 식으로 가격 폭락 또는 폭등을 막아왔다. 지난 2일에도 정부는 농축산물 정부 할인 지원율을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하고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을 지속해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계약재배 물량도 4만9000t에서 6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농축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서민 부당믈 줄이기 위해 정부 할인 지원율을 늘리고 가격 안정 자금을 지속해서 투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이처럼 국고를 열어 농산물 가격을 그때그때 보조하는 방식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사과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올랐으니 내년에는 사과를 많이 심는다 칠 때 날씨가 좋아 수확량이 급증한다면 이는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해왔던 방식대로면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잉여를 사들이는 등 재정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이 총재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이변이 향후에도 지속해서 국내 농산물 생산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지금처럼 재정 보조 정책만을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총재는 "그것(재정을 활용한 생산자 보조)이 하나의 국민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갈 수 있겠다"면서도 "그게 아니라면 수입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농산품 생산량이 널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수입을 확대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 총재는 "재정이나 통화정책 방식을 바꿔서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변화에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