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 SOS] ④ '복잡·미묘' 요양시설 '위생원' 환수 대처법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이해 어려운 위생원 업무 법령 위생원 세탁 업무 범위 애매해 시설 현실 반영하지 않는 규제 세탁물 전량 위탁 규제 완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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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면 국정감사가 열립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감사에서 '공단이 직원 친인척 운영의 장기 요양기관 36곳을 나가봤더니 34곳이 허위 청구가 적발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보고 요양급여 부당 청구 적발을 위해 현지 조사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논란의 이면을 보면 도대체 법령 기준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우면 심지어 공단 직원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기관도 저렇게 빠짐없이 허위 청구로 적발되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당국이 조사만 나가면 기준 위반이라고 적발되는 제도가 과연 현실적일까요. 조사는 과연 적정하였을까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쟁점은 없을까요. 그래서 살펴봅니다. 장기 요양기관에 대한 현지 조사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논란이 되는 환수 처분에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조사 이후의 절차는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 등의 주제로 3회에 걸쳐 법률적인 분석과 대응 방법에 관한 기고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사법시험 합격 후 10여 년 공단 법무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규제당국 내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장기 요양기관이 처하였거나 처하게 될 어려움에 조언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눈을 가리고 칼을 내리칠 정도로 법적 정의란 명확한 것이라는 의미겠지만 필자는 가끔 실제 정의의 여신상이 담은 의미는 그 반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실 속에서의 법이란 너무나도 애매하고 불분명한 것이라서 심판을 내리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칼을 내리쳐야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장발장에게 선고된 5년 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법령의 애매함이 현실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애당초 법령이란 만들기도 인간이, 해석도 인간이 하므로 완벽할 수가 없는데 그나마도 사회가 고도로 복잡해지면서 규제가 너무나도 많아지다 보니 현실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기엔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은 행정 관련 규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앞서 언급했듯 규제의 종류도 너무 많은 데다가 필요에 따라 계속 진화하는 업계에 맞추어 당국은 끊임없이 적정한 수준으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는 행정처분의 근거 법령을 해석하는 데에 명확성의 원칙, 엄격 해석의 원칙, 유추·확장해석 금지의 원칙이라는 법 원칙들을 적용하여 규제와 현실의 차이를 좁힌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규범의 내용은 명확해야 하는데 법규범의 의미 내용이 불확실하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고 법 집행 당국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명확성의 원칙).
또한 침익적 행정처분은 상대방의 권익을 제한하거나 상대방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근거가 되는 행정 법규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엄격해석의 원칙, 확장·유추해석 금지의 원칙). 여기다 법령 해석의 목표는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는 법령 해석의 원리가 더해진다.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하여 규정이 현실과 괴리되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이다.
즉 행정청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라 법령 자체가 명확할 것을 전제로 그 법령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상대방에게 불이익하게 확장, 유추해석하지 않으며 구체적 현실에 부합하도록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들에 장기 요양기관의 현실을 비춰보면 인력 배치 기준에 관해서는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점들이 보인다. 하는 일이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돼 있는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조리원 등에 비해 위생원, 사무원, 보조원 등의 경우에는 법령을 읽어봐도 하는 업무, 허용되는 근무 형태를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점들은 개중 위생원에 관하여 특히 도드라진다. 요양원에서의 위생원이 정확히 무슨 업무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명확하게 쓰여 있을까? 세탁을 안 하고 청소만 하는 위생원은 적법하게 근무한 것일까? 이들의 업무 내용에 관해 과연 공단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해석하지는 않고 있을까?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면 위생원을 고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세탁물의 전량 위탁이 요양원의 현실에서 타당성이 있는 규제일까?
위생원에 관해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입소자 숫자가 30명이 넘는 요양원이 위생원을 고용하고 세탁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는 경우 공단은 해당 위생원이 세탁 외에 청소나 환경미화 등 다른 업무를 얼마나 했는지를 문제 삼는다. 기본적으로 세탁 업무의 비중보다 청소나 위생관리 등 다른 업무의 비중이 높았다면, 세탁을 '주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력배치 기준을 위반했다고 보는 것이다.
요양원이 세탁 업무를 외부에 위탁한 경우라면 공단은 요양원 내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일부라도 세탁한 것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전량' 위탁하는 경우 위생원을 채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두고 있기 때문에 일부라도 원내에서 세탁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전량 위탁' 요건을 위반했다고 보는 것이다.
첫 번째 처분 사유에 대하여는 하급심 법원에서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기존 다수의 재판부들은 '위생원의 업무는 세탁 업무로서 세탁 업무를 주로 수행한 것이 아닌 한 인력배치 기준을 위반한 것'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장기 요양급여 제공 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 방법 등에 관한 고시에서 '위생원은 세탁 업무를 주로 하며 그 밖에 청소 및 환경위생관리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2017년 1월 1일 삭제됐지만 이는 요양원에서의 위생원 인력배치 기준을 필요 수에서 1명으로 바꿨으니 굳이 위생원의 업무에 관한 규정을 둘 필요가 없어서일 뿐(고시의 개정 이유에 그렇게 쓰여 있다)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면 위생원이 필요 없다고 정하고 있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을 봐도 법령이 정하고 있는 위생원의 업무는 예나 지금이나 '주로 세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글쎄 '세탁 업무를 주로 해야 한다'는 고시 규정이 삭제됐다면 뭇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위생원이 세탁 업무를 주로 하지 않아도 되는가보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을까? 법대 위에 고고히 앉은 판사님들이야 고시 각주의 의미와 개정 연혁까지 해석해 가면서 위생원의 업무가 무엇인지 추론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장삼이사들에게 이러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구나 세탁을 주로 해야 한다는 고시 규정이 삭제된 이후부터 요양원을 운영한 사람은? 요양원을 운영하겠다고 인력배치 기준에 관한 법령 규정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도 도대체 위생원이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세탁물을 외부에 위탁하면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세탁 업무가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청소는? 소독은? 통상 청소와 소독은 당연히 위생과 관련되는 사항이다. 세탁 업무에 건조는 들어가는가? 궁금증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심지어 고시는 위생원의 업무는 다른 직종의 종사자가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탁도 하고 청소나 환경관리 업무도 하면서 이를 요양원 내 다른 종사자들이 나누어 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정상적인 반응 아닐까? 칼럼을 쓰면서 자꾸 질문형으로 말을 맺어서 부끄럽지만 사실 필자도 너무나도 의문인데 답을 찾기가 어렵다.
고시를 잘못 해석한 책임을 수범자에게 묻는 것은 잘못됐다. 애당초 보건복지부의 책임이다. 위생원의 인력배치 기준이 필요 수에서 1명으로 바뀌었든 어쨌든 위생원의 주 업무가 세탁이라는 고시 규정을 삭제하지 않고 남겨 두었으면 되었을 일이다. 국가가 '오해'의 싹을 뿌려놓고 그에 따라 '오해'를 하였다고 제재를 가한다? 법치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다행히 최근 이에 대해 반성적 고려를 보이는 하급심 판결들이 최근 선고되고 있다. 작년 행정법원의 재판부 중 한 곳은 '위생원이 아예 세탁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 아닌 한 위생원의 근무를 인정받기 위하여 세탁 업무만을 주로 수행해야 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해당 고시 규정의 삭제로 인해 위생원의 업무 범위에 관한 명확한 규제가 없으며 배변이나 구토 등으로 급작스럽게 의복 등이 오염되는 경우까지 위생원이 모든 세탁물을 일일이 취합하여 세탁하도록 하는 것은 노인요양시설의 업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위생원만이 세탁 업무를 하게 둘 경우 오히려 입소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참작해 줬다. 앞서 본 현실의 구체적 타당성과 명확성, 엄격해석의원칙 등을 잘 반영해 준 판단이라 하겠다.
두 번째 처분 사유에 관해서는 요양원의 손을 들어준 사안은 찾기 어렵다. 법원은 대부분 '전량 위탁'이라는 문언을 기계적으로 해석한다. 법령 해석은 문언에서 출발하므로 법원의 이러한 해석이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판단이라는 점이 아쉽다. 전술한 사안의 재판부도 설시했지만 애당초 요양원에서 위생원을 두도록 한 이유는 수급자 어르신들을 보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모시기 위해서다.
외부 위탁을 하면 업체가 세탁물을 가져갈 때까지는 오물이 묻은 세탁물이 다른 세탁물과 같이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오물 묻은 빨래는 대부분의 위탁업체들이 수거해 가지도 않는다. 결국 위생적인 시설관리를 위해서는 애벌빨래가 필수인데 전량 위탁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이조차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규제가 현실을 외면하는 또 다른 사례라 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올해 새로 개정된 보건복지부 발행 노인보건복지사업안내 2024 책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탁 업무의 외부 위탁에 관한 기존의 규정과 법 집행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던 이유로 복지부와 공단에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해당 책자에 '세탁물을 위탁하는 경우 전량 위탁이 원칙이다. 다만 전량 위탁을 하더라도 시설 종사자가 신고한 직종의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일시적으로 위생원의 업무를 일부 보조할 수 있다'고 해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하는 자세를 보여줬다. 같은 내용으로 세탁물 전량 외부 위탁 여부가 문제 되는 기관이라면 보건복지부도 그동안의 규제가 비현실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요양원 원내 세탁이 일부 허용된다는 취지로 돌아섰다는 점을 법원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
위생원을 필수인력으로 둔 이유는 결국 수급자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대부분의 요양원은 위생원 인건비 몇 푼을 아끼려고 기준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르신들을 더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모시려고 하다가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 법원의 시선이 부디 법원 담장을 넘어 장기 요양기관의 현실에 와 닿기를 바란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제51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제42기)
법무법인 유원 소속변호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전문연구위원
법무법인 반우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