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자본시장과 이민자, 미국 경제의 강철검···아킬레스건은 물가
[김성재의 동서고금] 40년 만의 고물가→고금리→침체 예측 견고한 경제성장률 4.9% 실업률도 3%대 장단기 금리 역전에도 경기는 쾌속 항진 바이든 적자 재정·연준 유동성 주입 역할 탄력적인 자본시장·이민자는 경제 뒷받침
경제학 개념의 요체는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은 종종 ‘공짜 점심은 없다’는 문구로 설명된다. 여름휴가를 산으로 가면 맑은 공기와 넓게 펼쳐진 능선의 전망을 즐길 수 있지만 모래사장에서의 수영이나 바다낚시는 단념해야 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가치 있는 다른 하나가 바로 기회비용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높은 물가를 잡으려 하면 긴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정지출을 줄인다. 중앙정부는 금리를 인상하고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한다. 그러면 경기가 죽는다. 가계는 빌린 돈의 이자 비용이 늘어나 소비를 줄인다. 기업은 매출이 줄고 동시에 채무 부담이 증가해 이중고에 시달린다.
기업이 재정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해고에 나서면 실업률이 올라간다. 직장을 잃은 소비자는 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집을 팔아야 한다. 부동산 경기도 따라서 위축된다.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어 정부의 세수도 감소한다. 경기 침체는 매우 고통스럽고 비싼 대가가 따른다. 따라서 경기 침체는 물가 안정의 기회비용이다.
2021년 겨울 미국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7% 넘게 올랐다. 40년 만에 처음 보는 고물가에 가계의 시름이 깊어졌다. 인플레이션은 좋은 경기의 뒤를 따른다. 높은 물가는 호경기가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듬해 3월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연준의 정책금리가 1년 반 만에 0.25%에서 5.5%까지 단숨에 상승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전문가가 경기 침체가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다. 단기간 공격적으로 이루어진 금리 인상 쇼크가 금융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 봤다. 금융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주식과 채권시장이 모두 20% 넘게 폭락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실물경기도 크게 흔들렸다. 그해 상반기 2분기 연속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2023년 초 금융위기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해 3월 자산규모 20위 안에 드는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다.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은행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미국 경기가 큰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시장을 감쌌다.
2022년 하반기 미국 경제는 침체에 빠지기는커녕 순항을 지속했다. 매 분기 발표하는 경제성장률은 연률로 2%를 넘었고 실업률도 완전고용 상태를 의미하는 3%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2023년 하반기에 접어들자 점입가경이 되었다. 그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4.9% 성장했다.
금년 1분기에도 미국 경제는 3.4% 고속 성장을 지속하며 어느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 쾌속 항진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대표적 지표가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차다. 단기금리는 연준의 기준금리에 따라 정해진다. 장기금리는 현재와 미래 단기금리의 평균으로 정해진다.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10개의 향후 1년 만기 채권 금리를 평균한 것이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으면 연준이 미래 금리를 인하한다는 얘기다. 반면 채권시장이 미래 연준의 금리 인하를 전망하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진다. 이를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고 말한다. 연준은 경기가 좋으면 금리를 올리거나 동결한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강력한 경기 침체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1960년대 이래 장단기 금리 역전은 한 번도 틀린 적 없어 정확하게 경기 침체를 예상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와 3개월 국채금리는 2022년 10월 역전되었다. 그 이후 역전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역전 폭도 1% 포인트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채권시장은 1년이 넘게 여전히 강력한 경기 침체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 경제는 침체로 가지 않고 호황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 규모가 큰 주요 국가 가운데 미국 경제만 거의 유일하게 빠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미국 경제를 이토록 강하게 견인하고 있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그 이유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금융에 대하여 해박한 이들이 참여하는 채권시장까지 깜빡 속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미국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이 분명하다. 필자가 보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와 연준의 적극적인 경기 방어 전략의 성공이다.
백악관은 누가 뭐라 하든 간에 대규모 적자재정을 편성해 민간경제에 투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을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국방예산도 증액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 등 각종 인프라스트럭처 플랜을 추진하기 위해 거액의 혈세를 펑펑 쓰고 있다. 그러면서 학자금 대출 삭감 등 복지정책도 확대 편성하려 하고 있다.
연준도 겉으로는 금리를 인상하고 양적 긴축(QT)을 동원해 경기를 식히려 하지만 속으로는 은행에 대한 긴급 자금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유동성 주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한, 수시로 금리 인하 시그널을 보내 시장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를 통해 채권과 주식 가격을 부양해 가계 부를 지켜주고 있다.
둘째는 미국의 강력하고 탄력성 있는 자본시장이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상장된 뉴욕증권시장과 나스닥으로 전 세계의 투자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이 돈이 신기술과 신산업에 투자되면서 경제성장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는 전통적 은행산업에 부가해 사모펀드(PE)와 사모 대출(private credit)이 성장해 성장기업에 자금을 공여하고 있다.
셋째, 활발한 해외 이민의 유입이다. 최근 들어 이민은 금년 대선을 달구는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의 월경을 바이든 행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이민은 성장에 기여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유입으로 사양산업이 되살아난다.
고급 기술과 지식을 가진 해외 노동자가 유입되면 기술혁신의 자양분이 된다. 현재 미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많은 기업의 창업자와 CEO가 해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학에서 연구를 통해 기술과 학문의 발전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미국의 성장도 연준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 동향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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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