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백일장] 시골과 서울 15일의 순환 요양

제2회 해미백일장 김희정 님 입상작

2024-04-04     최영은 기자
어르신은 91살이시고 아드님과 거주 중이시고 시골에 집이 있으셨다. 시골에서 15일, 서울에서 15일 요양을 받으시는 어르신이었다. 사진은 AI에 의해 제작된 요양보호사와 어르신 이미지 /Chat GPT 4.0

작년 코로나 때 난 친정엄마로부터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실습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얼떨결에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 후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이번 년도 5월부터 갑자기 쉬게 되면서 뭘 다시 해볼까 하다가 작년에 따둔 자격증이 생각이 났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무작정 재가센터를 찾았을 때 날 보고 놀라시는 센터장님 왈 “선생님 몇 살이세요?” 그때 내 나이 47살 요양 보호사 치고는 아주 젊다면서 일 하실 수 있겠냐는 물음과 함께 “한번 해 보는 거죠. 뭐”하고 무작정 어르신을 맡게 되었다.

어르신은 91살이시고 아드님과 거주 중이시고 시골에 집이 있으셨다. 시골에서 15일, 서울에서 15일 요양을 받으시는 어르신이었다. 시골에 계시면 너무 일만 하신다고 15일은 서울에 올라오셔서 쉬라는 차원이었다. 처음 뵈었을 때 어르신은 날 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굽어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오셨다.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요구사항도 없으신 참 선하고 착한 어르신이었다. 농사일로 까매진 손톱, 마른 몸,굽은 허리 고생하신 지난날이 느껴져서 안쓰럽고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막 솟아났다.

그렇게 첫째 날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둘째 날 방문했을 때 난 어르신이 기저귀를 차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초보 요양사는 또 얼떨결에 기저귀 케어를 하게 되었다. 큰 볼일을 보고도 미안해서 말씀하시지도 못하고 계시는 어르신. 안 미안해하셔도 되는데 매번 기저귀를 갈고 깨끗이 목욕을 시켜드리고 나면 고맙다고 하시면서 딸도 이렇게는 못 한다면서 몇 번을 고맙다 하시는 어르신.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 직업이 나랑 진짜 잘 맞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평생 자식들 키우고 일하시느라 힘들게 사셨을 텐데 나이 든 걸 미안해하시는 어르신. 정말 서울에 계시는 동안은 내 어머니처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많이 못 걷는 어르신하고 1층에 내려가서 꽃도 보고 간식도 나눠 먹고 어르신이랑 있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낮잠 주무시는 동안에 물티슈로 목욕을 해도 지워지지 않던 손발 찌든 때를 깨끗이 닦아내고 큐티클 오일을 발라 드리면서 내 발보다 깨끗함에 흐뭇해졌다. /김희정

그렇게 15일이 지나고 어르신과 또 15일 이별을 하고 다시 만났을 때 어르신의 새까매진 얼굴과 손발을 보고 눈물이 살짝 났다. 얼마나 일을 하다 오신 건지 느껴졌다. “어르신 시골 계실 때 목욕하셨어요?” 물으니 “혼자 못했지” 하시길래 얼른 목욕을 시켜 드리고 낮잠 주무시는 동안에 물티슈로 목욕을 해도 지워지지 않던 손발 찌든 때를 깨끗이 닦아내고 큐티클 오일을 발라 드리면서 내 발보다 깨끗함에 흐뭇해졌다.

어르신. 평생 일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남은 시간은 나이 많음에 또 불편한 몸에 미안해하지 마시고 요양 잘 받으시고 편안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현장에선 저 같은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요양하고 계시는 많은 요양보호사분들이 계십니다. 부디 이 마음이 변치 않도록 이 보람된 일을 오래 할 수 있도록 요양보호사분들 처우가 많이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