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동요] ② ‘홍콩 ELS 자율배상’ 배임 면죄부 논쟁 “해운사 운임 담합 다툼과 쌍둥이”
법원 판결 전 과대 배상 시 배임 가능성 정치와 법리 잣대 달라 ‘자율’ 다툴 여지 23개 해운사 담합에 공정위-해수부 갈등 8000억원 과징금 vs 해운 현실 감안해야 배임 패소 시 경영진 사직 재취업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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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과 결혼하기 위해 만든 노래로 알려진다. 동네 아이들로부터 불리게 해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소원을 성취했다. [용산 동요]는 그 옛날 아이들의 노래와는 다르지만 서동요와 닮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 목소리를 궁궐 안으로 전달하는 노래와 같다. [편집자 주] |
올 한 해만 8조 손실을 앞둔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수습을 위해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자율 배상안을 7개 은행이 시행하기로 한 가운데 배임 가능성을 두고 법리학자 사이 의견이 엇갈린다. 금감원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지만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있고 만일 배상할 필요가 없는 경우 배상했거나 과대 배상했다면 회삿돈으로 제3자에게 이익을 줘버린 것이기 때문에 배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율’이라는 용어에 대해 법정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판단 잣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은행이 배임 리스크를 짊어지면서까지 자율배상안에 따라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권 교수는 과대 배상한 경우가 있을 때 금감원에서 면죄부를 준다고 했다 하더라도 법원에선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자율’ 용어에서 이 같은 실마리가 있다.
“금융당국이 피해 배상을 자율로 권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후 다툴 여지가 있다고 본다. 강제가 아닌 자율이었는데도 이사진이 임의로 회사 공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배임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현재 회사 경영진이 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낙인에 금융기관 재취업도 쉽지 않게 된다.”
권 교수는 재투자한 투자자에 대한 배상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사안에 따라 투자 손실을 소비자 책임으로 보고 배상 비율을 차감하도록 돼있다. 이를테면 가입 횟수가 21~20회는 2%, 31~40회 5%, 41~50회 7%, 51회 이상 10% 차감하는데 이는 18회까지 고수익을 얻고 19회째 손실을 맞은 소비자에게는 자기 책임을 묻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라도 배임 이슈에 대해 비켜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권 교수는 말한다. 배상하더라도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해수부-공정위 싸움에 등 터진 해운사
행정지도 안 따르면 불익 사실상 강제
홍콩 ELS 자율배상 배임 논쟁은 해양수산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년간 HMM(옛 현대상선) 등 23개 해운사의 운임 담합 징계 여부를 놓고 빚은 갈등과 비슷하다. 해운법 제29조에 따르면 해운선사들은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등에 대해 공동행위를 할 수 있는데, 다만 협약 내용은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하게 돼 있다. 공정위는 절차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면서 이들 해운사에 총 8000억원의 과징금 부과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반면 해수부는 “신고하지 말라고 구두 통보를 한 것 같다”면서 선처를 구했다. A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갈등이 반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해운사들이 정부 요구를 따랐지만 공정위에선 나중에 징계하려 했다. 쉬운 예로 채 상병 사건을 들 수 있다. 구조 장비 없이 구조하라 지시 내려 따랐지만 이제 와서 부적법한 지시 왜 따랐냐고 하지 않나.”
A 교수에 따르면 행정지도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안 따르면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성을 띠게 된다.
“자율배상안이 이사가 보기에 부적법하다, 합리성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따르면 안 된다. 결과적으로 배상하게 되면 부적법한 배상안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문제없다고 하지만 그건 행정부 이야기고 나중에 문제 제기 돼 기소돼서 법원으로 가면 모른다. 총선을 앞둔 행정부 입장과 사법부 법리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고 누구라도 검찰에 수사 요청할 수 있다. 검사가 배임이라 판단하고 기소하면 법원 가서 판결받게 된다.”
한편 배임 가능성이 적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 해운사 운임 담합 사건의 공정위 과징금 부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취소됐다. 지난 2월 2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김대웅 김상철 배상원)는 ‘해운사 담합 규제 권한은 해수부에 있다’면서 공정위의 규제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 가능성을 놓고 볼 때 정부가 ‘가능성 없다’는 건 결국 정부가 보증하겠다는 소리니 배임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모든 금융기관은 정부 방침대로 한 번도 안 따른 적이 없다.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은행과 개인의 계약 정부 개입 과도해
시끄러우니 은행에 슬쩍 떠미는 형국
자본시장법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과 붕괴 가능성마저 우려하기 시작했다. 잃으면 물어주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고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은 이미 크게 흔들렸다.
익명을 요구한 B 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금융상품 투자 손실 위험성에 대해 고객이 설명을 잘 들었다고 사인을 비롯해서 녹음까지 하지 않나. 소비자가 은행과 일종의 사적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과도하게 정부가 개입하는 게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다”라면서 “다만 위험성이 있다는 설명을 안 했으면 금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설명을 했고, 설명을 들었다고 사인을 했으면 그건 본인 책임이다. 데이터가 다 남아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C 교수는 “본래 금융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조사를 해서 그 결정에 따라 배상하는 것이 맞다. 지금의 자율배상안엔 무리가 있다”라면서 “홍콩 ELS가 문제가 많이 되니까 총선을 앞두고 피해자들을 구제해 주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금융 질서, 실은 계약 질서인데 이를 파기하는 것은 자기 결정에 대한 자기 책임 원칙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투자 손실을 정부가 개입해서 보상하게 하고 세금으로 보상해 주는 게 반복되는데 잘못하면 금융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냈다.
자본시장 분야 분쟁을 전담하는 국내 대형 로펌 변호사 D씨는 본지에 “투자자가 손해 봤다고 주장해서 물어줬는데 법원에서 따지고 보니 (은행이) 자본시장법 및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내릴 근거가 없다면 (배임으로) 처벌될 수 있다. 회삿돈으로 3자에게 이익을 줬기 때문이다”라면서 “더구나 법원은 (원금 전부 혹은 모든 사례에 대해) 다 물어주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근거가 없으면 기각된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시끄럽게 안 하고 싶으니 슬쩍 은행에 떠미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당시 갑자기 금융시장이 변동했고 그 이후 정부가 앞장서서 물어주라고 하기 시작했다”라면서 “원칙이 무너졌다. 금감원뿐 아니라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도 물어주기 풍토에 이미 젖어있다”라고 지적했다. E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투자에서 손실 났을 때 다 물어준다는 선례를 보이게 되면 이러한 일종의 사회적인 약속이 굳어질 것이다"라면서 "이것은 포퓰리즘과 맞물려 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