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권 내시죠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독서 취미가 글쓰기 취미로 글쓰기 취미가 책으로 형상화 자기 이름 책 발간의 행복함이란
“책 한권 내시죠.”
나를 만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어느 금융회사 사장이 그동안 그린 그림과 글을 보더니 대뜸 하는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결국은 책을 내게 됐다. 혹자는 내가 책을 낸다니까 글재주가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작가가 아니다. 글 쓰기를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책을 내느냐고?
칭기즈칸이 했다는 얘기, 소위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자신이 세계를 제패했다고 읊었다는 그 얘기를 패러디 해 보자.
나는 건축의 `건’자도 모르지만 내 손으로 집도 지어봤고(놀랍게도 TV 주요 프로그램에 10회 소개) 제주에 내려와 해녀가 살다 폐가가 된 집을 두 채씩이나 역시 내 손으로 직접 고쳐 살고 있다. 나는 미술학원 근처도 못 가 봤고, 전문으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나만의 그림으로 네 차례의 초대전과 두 차례의 ESG아트전을 치렀다. 나는 학자도 아니고 연설가도 아니지만 숱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눈치 빠른 독자는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즐기면 된다. 요즘은 책 쓰기 도구도 편리해졌고 큰돈 안 들이고도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어느 플랫폼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200페이지 분량, 한 권의 책으로 내는 서비스를 10만원 내에 제공하고 있다.
소설이나 시 등 특정 장르에서는 어느 정도 제약이 따르고 그런 분야는 기본적으로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쥐어짜 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작업이니 일반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 보라고 권하는 것이 일견 저어되기는 하나 다행스럽게도 부담 없는(?) 미셀러니 류가 거반 이상 일터이니 한번 도전해 보자.
“에이~ 그래도 나는 글재주가 없는데” 하는 독자가 많겠다. 취미와 삶, 인생 후반부의 삶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수강하는 이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아니 짐작은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떤 것이 취미고, 무엇을 즐긴다는 걸 잘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즐기는 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는 차원에서의 일을 시도도 해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필히 스토리가 생긴다. 그걸 한번 정리해 남겨보자. 그게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런 내 생각이 벌써 세 번째 책을 내게 했다. 어느 회사의 기록용으로 2000년에 발간된 <254 Steps in America(비매품)>, 사내 교육용으로 발간된 <함께 더, 오래 가는 삶(2020)>, 그리고 곧 세상에 태어날 <제주해녀가 키운 발룬티코노미스트(여성경제신문)>이다.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고 그를 기록으로, 보이는 산물로 남긴다는 일, 얼마나 가슴 벅차고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책을 내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느 정도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우선돼야 한다. 둘째는 자신의 책을 팔기 위함이거나, 자랑할 목적이라면 좀 더 망설여 보자. 그건 스트레스며 일반인이 책을 내라고 하는 취지도 아니다. 또 하나, 책을 쓰려면 일단 책을 많이 읽자. 책 속에는 모든 길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한 교보 창업주의 말은 그래서 책이 모든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나의 역사를 형상체로 만든다는 희열은 그 어떤 일보다 행복하다. 책 읽는 취미가 글 쓰는 취미가 되고, 그것이 나만의 책을 내는 선순환, 그 수레에 올라타 보자.
“책 한권 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