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가운 키오스크 말고 온기 남은 인간이 좋다

2024-03-31     김현우 기자
한 노부부가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먹자골목'을 걷고 있다. /김현우 기자

50㎝ 사수와 부사수가 떨어져 앉은 거리. 150㎝ 부장과 평사원 책상 거리. 200㎝ 임원실과 일반 사원 사무실 간 거리. 사람이 나이 들어 청력이 떨어지면 단 60㎝ 거리에서도 대화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요즘 직장인은 청력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대화는 단절됐다. 엎어지면 코가 닿으면 다행이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서도 요즘 직장인은 입이 아닌 키보드로 말한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업무 활용 능력은 높아졌다. 문제는 사람끼리 같은 공간에 있어도 디지털 세상 속에서 교류한다는 거다.

비단 회사뿐만이 아니다. 외식 문화도 바뀌었다. 시끄러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이들로부터 잠시라도 해방될 수 있는 좋은 무기다 있다. 스마트폰을 쥐여주고 게임 유튜버 영상만 틀어주면 '지옥 자녀 육아'로부터 탈출이다. 

식당 직원들도 기술의 발전 덕에 귀찮은 고객 응대로부터 해방이다. 식탁마다 놓인 무인 주문기나 키오스크만 설치해 두면 세상만사가 편하다. 음식을 직접 가져다주다 실수라도 손님에게 쏟을 일도 없다. 서빙로봇이 다 해주니까. 

온기가 없다. 사무실에 놓인 키보드, 아이들이 만지는 스마트폰, 식탁 위의 무인 주문기, 음식 가져다주는 서빙 로봇, 키오스크 모두 차디찬 쇳덩이와 플라스틱이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기술의 발전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기술을 이용하는 게 아닌 기술에 몸을 기대고 있다. 기술의 차가움에 인간의 온기도 식었다. 

기술에 익숙지 않은 여든 살 노인이 어느날 죽을 포장해 가려 죽집에 갔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없고 키오스크만 덩그러니 노인을 맞이했다. "이보쇼 주문 좀 합시다". 애타게 외쳤지만 아르바이트생은 "키오스크 이용하세요" 한마디 툭 던졌다. "아휴 키오스크가 뭣이여 주문 좀 받아주쇼". 또 애타게 불렀지만 "키오스크로 주문하셔야 돼요". 표정 하나 안 변한 아르바이트생은 차가운 쇳덩이 기계처럼 매몰찼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던 노인과 차디찬 젊은 아르바이트생. 두 세대 간 온도는 극명히 갈렸다. 기술의 차가움에 물든 젊은 세대와 온기에 찌든 기성세대 간 냉전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얼마 전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UI(User Interface)를 도입하겠다고 자신 있게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노인이 말했다.

"아니 그냥 안 쓰면 안되유. 난 아날로그가 좋아유. 기계가 좋으면 익숙한 사람끼리 쓰셔유. 거 주문받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우리 갈 때만이라도 사람이 좀 주문 받아줘유. 키오스크·사람 투 트랙 전략으로 갑시다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