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연금보험, '인출 상품' 늘리고 설계사는 컨설턴트로 진화···고령화 시대 생보사 활로 될까
보험연구원 제47회 산학 세미나 개최 장철 '연금, 적립 시장에서 인출 시장으로' 英 연금시장 인출 위주···적립 상품 극소 모집 수수료 대신 자문·구성 요금 받아야 새 이율 체계·일반계정 지수 연계형 운용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연금보험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연금보험에 관해 주로 '세제 혜택'이나 '판매 수수료' 측면을 논의해왔으나 상품 본연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모집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고 설계사가 '컨설팅'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연금보험 시장은 전환기를 맞았다. 연금보험은 은퇴 전 '적립'한 보험료를 은퇴 후 보험금으로 '인출' 받는다. 베이비붐 세대 가입자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인출에 특화된 상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적립의 시선에서 연금 상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2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산학 세미나 '연금, 적립 시장에서 인출 시장으로'에서 발제자로 나선 장철 교수는 "한국은 새로운 연금 상품이 나오면 이자율이 얼마고 나중에 돈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며 "저축 위주의 상품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영국 노팅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 종신 연금보험은 생명보험사만 판매할 수 있다. 신시장 개척이 필요한 생보사가 연금보험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모집 수수료 체계를 투명하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수수료가 없는 채널도 만들어져야 한다. 장 교수는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이해)해 왔던 태도도 있겠지만 모집 수수료에 관해 한번 다시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다"며 "모집 수수료를 올리면 (설계사는) 상품을 많이 팔겠지만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넘어갈 때 이분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좀 의문"이라고 말했다.
모집 수수료를 줄이거나 없앤다면 기존 설계사 인력은 '어드바이저(advisor)'가 되어 수수료 대신 '피(fee)'를 받는 식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 장 교수는 "영국에서는 보험 상품이 조언받을 수 있는 상품(어드바이스)과 조언 서비스 없는 상품(논 어드바이스)로 나뉜다"며 "고객에게 적합한 연금보험 상품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상품을 구성해 준 뒤 요금을 받는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은 성공적으로 인출식 연금보험 시장을 구축했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연금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정 교수에 따르면 영국의 비강제적 연금(annuity) 중 적립성 상품은 주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상품처럼 구성돼 있다.
영국은 고금리 시절 종신 연금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연금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어나고 대형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연금보험료가 조정됐다. 이에 따라 생보사의 매출도 급격히 늘었다.
반면 한국의 연금보험은 공시이율에 의존적이라 이자율 민감도가 낮다. 장 교수는 "최근 채권의 이자율이 높은 상황을 활용해 5년이나 10년의 단기 이자율을 확정하고 나머지는 공시이율로 돌리는 등 노력이 보이지만 대체로 한국의 연금보험은 공시이율의 틀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새로운 이율 체계의 개발이 효과적이다. 통계청에서 공시하는 기대 여명을 기반으로 이율 체계를 산정하는 '장수 이율'을 만든다면 인출 위주 연금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노출되는 장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새로운 이율체계를 만들어 지수 연계형(equity-linked) 연금보험의 운영을 일반계정에서 할 수 있게 돼야 한다. 장 교수는 "많은 (업계) 사람들이 특별계정에서 연금 보험이 운영돼 힘들어한다"며 "(보험사) 운영단이 나서야 하는 문제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상품 개발을 제약하는 제도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라고 봤다. 장 교수는 "(지금의) 제도가 연금 시장에서 소비자의 퇴직 소득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의미 있는 보험 상품을 만들기 위한 제도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보험연구원 제47회 산학 세미나에서는 연금보험 상품과 시장에 관한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졌다. 사회는 이경희 상명대학교 교수가 맡았고 토론자로 최두호 교보생명 파트장과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호균 금융감독원 책임전문감독관, 최양호 한양대학교 교수가 참석했다. 발제자 장철 교수는 영국에서 현지 시각 오전 5시에 화상통화 프로그램 '줌'을 활용해 세미나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