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의성 산수유축제'에서 생긴 일
[송미옥의 살다보면2] 준비 없이 고택스테이 했다 배고파 불 켜진 집 찾아가 동냥해 먹고 배탈 친구는 그때 생미나리 맛을 알았고
봄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TV 화면에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봄꽃보다 더 화사하다. 오래전 의성 산수유축제를 함께 다녀온 친구가 올해도 산수유를 보러 가자며 내려왔다. 그에게 가장 기억나는 여행을 꼽으라면 유럽도 미국도 아닌 사람이 꽃보다 더 예뻤던 의성 산수유축제를 꼽는다. 나도 고생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 당시 여행 분위기도 낼 겸 근처에 오래된 고택스테이를 온라인으로 예약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문자로 받은 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큰 대문으로 들어갔다. 딱 한 팀만 예약받는 고택의 구조는 넓은 마당을 지나면 대청이 딸린 두 칸의 넓은 방과 양쪽 별채에 따로 화장실과 세면장, 주방이 각각 있었다. 입식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 불편한 동선은 처음엔 신기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어두워지자 귀찮아졌다. (고택 근무하는 나도 숙박은 처음이라···)
그러나 피곤하고 귀찮은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배고픔이었다. 우린 씻지도 않고 누워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을까 했는데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 신세계 언어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물 한 병 달랑 넣어 즉흥적으로 나선 게 사달이 난 것이다. 유일한 상점인 근처 농협마트도 6시에 마감이라 문이 닫혔다.
웃기는 건 거기서 시내 편의점 거리가 3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우린 그곳을 나오면 아까운 숙박비도 버리고 집으로 갈 것 같은 생각에 돈이 아까워 생각까지 정지시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만 배가 불러야 수다도 떨고 잠도 온다. 우리는 라면이라도 구할 요량으로 불 켜진 집을 찾아보다가 안 되면 숙박을 포기하고 귀가하기로 했다. 다행히 길가 한 집에 잠 못 든 노인네 두 분이 화투를 치고 있었는데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서울 꽃이 더 이쁠 탠디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여?”
두 분은 치던 화투판을 접더니 한 어른이 주방에서 묵은김치랑 몇 가지 반찬을 봉지에 담아 주었다. 다른 한 분이 자기를 따라오라며 어두운 밤길을 앞장섰다. 100m도 넘는 고불고불 캄캄한 길을 따라 들어간 작은 집에서 어른은 따뜻한 밥이랑 깨끗이 씻어 놓은 미나리 산나물 된장 등등 내일 아침에 먹을 라면까지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 어른은 우리가 길을 잃을까 봐선지 아니면 다시 친구네 가시는지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날 차려진 거지꼴 밥상은 얼마나 푸짐하고 맛있었는지, 친구는 그때 생미나리 맛을 처음 느껴보았다며 미나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다시 찾은 그곳은 300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가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고향같이 우리를 반겨준다. 축제가 오랫동안 알려져서인지 구석진 시골 마을임에도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알고 보면 산수유꽃은 그리 예쁘거나 화려하지 않다. 열매도 크게 실용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먹을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건강식품으로 연구 개발되어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농한기 일거리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아무려나 화려하지 못하면 일등으로라도 피어야 알아봐 주는 세상이란 것을 꽃도 알겠지. 흐흐···.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지만 스토리도 만들어 준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을 다녀와도 기억이 잘 안 나는 곳이 많다. 이곳은 절절한 배고픔의 기억으로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일찌감치 축제장 내 식당에서 미나리 삼겹살로 옛날 추억을 더듬으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다에 빠졌다.
어느 여행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좀비가 되어 마을을 헤매고,
배가 너무 불러서, (둘 다 급하게 먹다가 체했다)
밤을 꼴딱 새며 교대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하나는 보초 서고 하나는 일보고,
그렇게 우리의 우정도 깊어졌던···
삶의 한 자락 이야기
우리 동네 사람들도 산수유축제를 다녀왔다. 봄 미나리를 한 보따리 사 들고 와서 회관에 풀어놓고 부른다. 커다란 양푼 속 향긋한 미나리 비빔밥에 서로의 숟가락이 부딪치며 수다를 떤다. 타임머신을 타고 봄 처녀가 되어버린 할머니들은 자러 갈 생각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