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신시장 '유병자 연금보험'···"규제 풀고 세제 혜택" 있어야

유병자, 의료비 지출 多·기대여명 少 위험률 등 정확한 통계 산출이 먼저 英, 정책 지원으로 점유율 30% 달해 사업비 못 붙이니 판매할 유인 적어

2024-03-19     허아은 수습기자
유병자 연금보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 개편이 필요하다. 사진은 환자와 감염원 이미지 합성 /연합뉴스

건강이 좋지 않아 기대수명이 평균 이하인 피보험자에게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하는 '유병자 연금보험' 출시에 금융당국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저축성 상품에 대한 강력한 환급률 규제하에 사업비를 많이 붙일 수 없는 구조 때문에 업계가 유병자 연금 보험 판매에 적극적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생명보험 업계는 유병자 대상 연금보험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열린 생명보험협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철주 생보협회장은 "연금시장에서 생명보험만의 차별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및 상품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보험개발원은 지난해 유병자 연금보험 상품 개발의 핵심인 비표준체(비건강체) 통계 구축 관련 연구에 착수했다. 보험료 산출에는 예정 사망률의 정확한 통계가 중요하다. 한국은 기대여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국가로 보험료 산출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보험사는 장수 리스크에 노출된다. 가입자가 예상한 기간보다 오래 살아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이 늘어나는 것이다.

업계 역시 위험률에 대한 통계가 나온 다음에야 상품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유병자 연금보험에 관심을 가지고 검토 중인 회사가 몇 군데 있다"면서도 "아직 유병자 관련 통계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상품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유병자 연금보험이 전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국가다. 연금 시장에서 유병자 연금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30%에 달한다. 퇴직자산을 종신연금으로 구입하도록 유도한 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국의 유병자 연금보험은 가입자의 질병 유무뿐 아니라 흡연 등의 생활 습관, 거주지, 혼인 여부 등의 요소를 연금액 차등화에 반영한다. 노력에 힘입어 2015년 종신연금 의무화 제도가 폐지되며 전반적 개인연금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유병자 연금 상품의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병자 종신연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수요가 유지된 것이다.

한편 국내의 경우 노후 소득 확보를 위한 연금보험의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지만 개인연금보험 시장은 매년 축소되는 상황이다. 보험개발원이 지난달 발간한 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생보사 연금보험의 전체 수입보험료는 최근 6년간 2.8% 감소했다. 다양한 보장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연금 상품이 부족하고 정교한 세제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유병자 연금보험 도입은 국내 개인연금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비자는 새로운 연금 보장 수요를 맞추고 업계는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가입 유인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지만 국내 보험업계의 경우 저축성 상품에 대한 사업비 규제로 인해 상품 출시와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규제에 따르면 저축성 보험은 계약자가 보험료 납입을 완료한 시점에 원금 100%를 환급할 수 있도록 책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평균 공시이율이 떨어지면 업계는 사업비 역시 줄일 수밖에 없다. 생보사들은 당국에 저축성 보험과 연금보험의 사업비규제 이원화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용범 한국보험계리사회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사업비를 많이 붙일 수 없으니 수당 수수료가 많이 잡힐 수 없고 그러다 보면 판매자 입장에서 다른 걸 파는 게 나은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대로 유병자 연금보험이 활성화되려면) 세제 혜택 등을 줘야 하는데 최근 한국은 반대로 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