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돌봄 업계 외국인 임금 차등 적용···현장 반응은 시큰둥
실제 상황 고려하지 않은 정책 기존 인력 처우 개선 우선돼야
한국은행이 돌봄 서비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제안하자 돌봄·이주노동자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돌봄 업계에서도 "현장과 접촉하지 않은 탁상공론 정책"이라고 말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한국은행을 비롯해 정치계, 재계에서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보고서를 통해 돌봄 업계 인력난 해소를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안은 개별 가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사적 계약 방식이다. 사적 계약을 할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두 번째 안은 돌봄 업계에 외국인 노동자 수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다. 한국은행은 이 방식을 통해 도입된 외국 인력을 재가요양과 시설 요양 모두에 활용할 수 있고 관리·감독에 대한 우려도 상대적으로 작다고 설명했다. 또한, 타 산업에 비해 낮은 돌봄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을 반영한 최저임금 적용은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도 찬성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중한 한국은행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 노동자의 월급이 월 200만원이 넘어서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돌봄·이주노동자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은행의 제안을 두고 "반인권·차별적 발상"이라고 규탄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 연구소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외국 국적자 임금 차등 적용을 할 경우, 이주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낮은 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거고 이것이 전반적인 임금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방안이 현장 상황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정책은 100%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권 회장은 한국 내부의 기반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우리나라 노동자보다 적게 주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나 "고급 인력을 들이고 안정적으로 요양복지의 질을 상승시키려면 어느 정도는 균형적으로 가격을 책정해서 들여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일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지 체류비도 필요하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행깃값이나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비용도 따로 존재해, 실질적으로 외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예상보다 더 적어진다"고 부연했다. 권 회장은 임금 결정 시 이런 것들도 고려해야 하며 적정 가격을 찾기 위해 해외에 요양원을 지은 뒤 그곳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을 먼저 채용하는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른 전문가도 '기존 인력 처우 개선이 우선이다'라며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학교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보면 주로 50대 60대"라며 "어떻게 젊은 인력을 활용할까를 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조추용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함부로 찬성, 반대를 얘기하기 힘든 주제"라며 "처우 개선과 인력 공급이 힘든 상황에 외국인 노동자를 차등 적용해서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