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카리나도 즐겨 입는 뜨개 스웨터···뜨개 열풍도 덩달아 후끈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기다림의 미학인 손뜨개 세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그 매력은 무엇일까?

2024-03-11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서두르지 마! 그럴수록 뜨개는 점점 미워져'

​MZ세대에 불고 있는 뜨개 열풍 /그림=홍미옥, 갤럭시노트20U​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어나가는 손끝의 예술인 뜨개 열풍이 불고 있다. 각종 매체나 SNS상에서는 2030에 불고 있는 이런 현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어머니, 할머니의 손끝에서 피어나던 실과 바늘의 어울림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던 셈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그리고 넉넉한 품으로!

할머니 스웨터는 명품 카디건으로 태어나고

최근 열애 소식으로 팬들의 응원과 뭇매를 동시에 받는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카리나, 그의 뜨개 패션은 지금 최고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얼기설기 그물 같은 짜임에 어찌 보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크기의 앙증맞은 크로쉐부터 큼지막한 스웨터까지 입었다 하면 불티나듯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들어오는 옷은 별다른 장식이 없는 큼지막한 디자인의 뜨개 스웨터다. 얼핏 보면 대나무 바늘로 무심하게 뜬 할머니 옷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이다.

옛날 할머니들의 스웨터를 연상케 하는 뜨개옷을 입은 카리나 /사진=카리나 인스타그램

재밌는 건 오래전 우리네 할머니들의 필수 패션이었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는 점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장롱 속에서 세상 나들이를 하던 두툼하고 넉넉한 그것은 할머니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큼직한 주머니에는 손주들에게 건네줄 사탕과 용돈이 들어 있었을 법한 스웨터였다.

할머니의 대표 겨울 패션으로만 인식되던 스웨터가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패션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 넉넉함은 루즈함으로, 촌스러움은 레트로함으로 표현을 달리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나 뭘 입어도 예쁜 '카리나'가 입었으니,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선지 길거리에서도 할머니 스웨터 패션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뜨거운 주전자와 실뭉치

난로 위 주전자에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수증기를 온몸으로 쏘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빨갛고 노란 털실 뭉치였다. 누군가가 입었던 뜨개옷을 풀어 주름을 펴는 용도로 뜨거운 물 주전자를 사용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다소 원시적이기도 하지만 나름 훌륭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요즘 인기 가전인 의류관리기도 알고 보면 같은 원리이니 말이다.

젊고 고왔던 엄마는 실을 돌돌돌 풀고 동그란 실뭉치를 들고 있는 나는 예닐곱 어린아이였다. 옷이 스르륵 풀려나가는 걸 보는 재미가 제법 좋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또래 아이들은 엄마가 짜주신 스웨터, 원피스, 모자로 따뜻함을 선물 받곤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엄마들에게 뜨개질은 필수였나 보다.

수예점, 뜨개방, 뜨개 카페 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일부 마니아들이나 공방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뜨개 열풍이 거세진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젠 거기에 2030 세대들도 가세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뜨개 장인들의 활약

​​공예작가 박주희 '봄을 기다리는 카디건' 메리노울 & 모헤어​​ /박주희

코로나가 가져다준 집콕의 영향이었을까? 시간과 끈기가 필수인 뜨개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중장년층은 물론이오. 2030 세대에서도 뜨개 열풍은 가위 폭발적이다. 온라인 카페에 정성껏 제작한 도안을 나눔하고 작품들을 올리는가 하면 그걸 바탕으로 수익에 이르는 등 뜨개의 인기는 말 그대로 상종가다.

그중에는 뜨개옷으로 대박을 터트린 젊은이도 있고 억! 소리 나게 값비싼 명품 스웨터를 시장에서 산 털실로 그대로 재현해 화제를 모은 주부도 있다.

그렇다면 취미를 넘어서 시장을 넘보는 뜨개의 매력은 무엇일까? 공예작가로 활동 중인 박주희 씨의 작품 <봄을 기다리는 카디건>을 보면 2024의 대표컬러인 피치퍼즈를 바탕으로 작은 바람들을 열매처럼 표현했다.

요즘 트렌드인 크롭스타일의 스웨터에는 실과 바늘 그리고 작가의 마음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뜨개에 무지한 내가 보기에도 대단한 정성과 만든이의 마음이 깃들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젠 우리가 늘 입는 옷과 소품에도 자기만의 생각을 촘촘하게 담아 입는 시대다.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기성복뿐만 아니라 매사에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소재일 수밖에 없다. 뭐든지 빨리빨리 지나가는 세상에 기다림의 미학인 뜨개의 인기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나도 노안이 더 심해지기 전에 뜨개질을 해보고 싶어졌다. 올겨울엔 직접 뜬 머플러를 두를 생각에 이미 마음은 뜨개방으로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