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앞당겨 연 긴급 응급의료상황실 시작부터 응급실 뺑뺑이

한덕수 떠나자마자 현장 모른다는 불만↑ 입원 어려운 환자 재실 중 아니라며 퇴짜

2024-03-08     이상헌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응급 환자 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희 권역은 02-2030-04XX~X으로 전화하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응급환자가 생겨 □□권 상황실 담당 직원에게 문의하니 '응급 시술 후 입원시키지 못하는 환자는 최종 치료가 제공됐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었습니다. 어이가 없어 센터장이랑 다시 의논해 보라고 했는데 답변 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권역의 한 병원 소속 응급전문의 A씨가 윤석열 정부가 의료 대란에 대한 대응책으로 야심 차게 내놓은 긴급 응급의료상황실이 오히려 '응급실 뺑뺑이'를 유발하고 있다는 제보를 여성경제신문에 전해왔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1만명의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자 정부는 병원 간 전원을 특별 관리하는 응급의료상황실을 당초 계획보다 약 2개월 당겨 지난 4일 출범시켰다. 하지만 너무나 급하게 업무가 시작된 나머지 직원들 교육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현장의 불만 목소리는 지난 5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중구 소재 응급의료상황실을 격려 방문한 직후부터 터져 나왔다. 2014년부터 이미 운영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센터 재해상황실 병원조정센터의 간판만 바꿔 단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의료진들의 복귀가 미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수도권 긴급 대응 응급의료상황실을 방문해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본지가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2024년 보건의료 재난 대응을 위한 긴급 대응 응급의료상황실 운영 안내' 문건을 보면 병원 간 전원 지원이 필요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의 지역에 맞는 전화번호로 문의하라고 연락처가 적혀 있다. 그런데 모든 번호가 같은 사무실 번호(02-2030)로 시작해 권역별 응급 지원 취지가 무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5월까지 순차적으로 개소할 권역별 응급의료상황실 4개소(수도권,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를 앞당겨 수도권 상황실에서 통합 운영하는 것은 응급실 미수용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전화번호만 권역별로 분류해 놓고 보여주기에 치중한 결과 탁상행정의 부작용이 응급 현장의 피해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지난달 29일 배포한 긴급 대응 응급의료상황실 운영 안내문 /제보자

전화번호만 권역별로 나눈 탁상행정
직원들 공무원 마인드가 뺑뺑이 유발

병원 간 전원 중개 기능은 조석주 부산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2001년 창안한 개념이다. 2016년부터 각 응급실에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응급환자 분류체계가 도입됐고, 응급실 뺑뺑이 논란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소방구급대가 올해부터 KTAS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4개 권역 광역 응급의료상황실의 기원은 119로 통합돼 이미 사라진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였다.

책임전문의, 공중보건의, 상황 요원을 한 팀으로 하는 상황실의 공무원식 마인드는 병원 간 전원 신청 대상을 '응급실 재실 중인 환자'로 한정한 문건에서부터 확인됐다. 이재명 대표의 부산 가덕도 피습 사고 당시 응급헬기를 이용한 서울대병원으로의 전원에도 적용됐던 지침이지만 A 병원의 사례처럼 입원이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재실 중이 아닌 환자로 분류해 거절하는 안이함이 응급실 뺑뺑이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 어떤 의사라도 찾아주겠다는 중매자, 거간꾼이 돼야 할 상황실 직원이 수요자가 원하는 업무가 아닌 매뉴얼 상 문구에만 얽매여 현장 전문가를 무시하는데 "퍽이나 다시 전화하고 싶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석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니터와 매뉴얼만 보고 일을 하는 직원이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태가 응급 현장을 더욱 악화시킨다"며 "실무자의 상부 책임자가 정신 교육을 잘못 시킨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