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TV의 시대는 갔다···일상에서 사라져 버린 TV
TV 보유율 증가, 시청 시간은 줄어들어 가족 시청, 커뮤니케이션 의미하지 않아
양은영 씨(45)의 집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집안 어디를 둘러봐도 TV가 없다. 저녁을 먹고 가족은 모두 흩어진다. 남편은 안방에서 낚시나 스포츠 관련 유튜브를 보고 중학생인 두 아들은 각자 자신의 방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양씨도 설거지를 끝낸 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간다. 가족 누구도 TV를 찾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한다.
전미혜 씨(53)의 집안도 비슷하다. 남편은 안방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고등학생 딸은 자신의 방에서 공부하고, 중학생인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쿠키런 게임을 한다. 4명의 가족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한다. 유일하게 모이는 시각은 저녁 시간뿐이다. TV가 없어서 함께 모이는 시간은 적지만 저녁을 먹을 때 TV 소리 대신 가족들의 대화 소리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양씨와 전씨와 같은 가구는 흔하지 않다. TV가 없는 가구의 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1년과 2022년 TV 보유 대수 조사에 따르면 TV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는 2021년 전체의 1.3%였지만 2022년에는 0.8%로 줄어들었다. TV가 있는 가구가 90%가 넘는다.
그렇다면 TV가 있는 가구는 TV를 보는 시간이 많을까? 방송통신위원회의 연도별 방송 매체 이용 행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TV 시청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0년 전인 2013년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이 3시간 14분이었지만 2022년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2시간 36분으로 약 40분 정도 감소했다.
TV의 자리를 OTT와 유튜브가 대신하고 있다. OTT 플랫폼의 1위인 넷플릭스는 매년 가입자 수가 8~9% 증가하고 있고 그 수는 1200만 명을 넘어섰다. 유튜브 또한 우리나라 국민의 80%인 약 4100만 명이 봤다. TV가 있어도 TV를 찾는 사람이 없다.
김정호 씨(23) 가족은 거실에 TV가 있지만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버지만 거실에서 가끔 TV를 보고 다른 가족은 각자 방에 들어가 엄마와 동생은 스마트폰을, 본인은 노트북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시청한다. 김씨는 "각자 보고 싶은 콘텐츠도 다르고 콘텐츠를 볼 방법도 많아서 굳이 가족끼리 모여서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간헐적으로 TV를 보는 가구도 있었다. 김준수 씨(21)의 가족은 2, 3년 전만 해도 가족끼리 TV를 봤다. '신서유기'나 '대탈출'과 같은 인기 프로그램의 방영 시간이 되면 가족이 모두 거실에 모였다. 지금은 TV로 볼 콘텐츠가 없다는 이유로 각자의 콘텐츠를 즐긴다. 김도형 씨(27) 가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요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는 가족이 TV 앞으로 모인다. 지난 9월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일이었던 그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안방에 있었고 본인과 동생은 각자 방에 있었다. 가족을 모은 것은 남자 자유형 400M 결승 경기였다. 경기를 보기 위해 가족이 거실에 있는 TV 앞에 모였다. 가족 모두 과일을 먹으며 김우민 선수를 응원했다. 4번 레인의 김우민 선수는 처음부터 1위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끝까지 1위를 유지해 금메달을 땄다.
오소정 씨(22) 가족은 조금 달랐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저녁에 가끔 영화를 보곤 한다. 2023년 9월 30일도 그런 날이었다. 가족이 모여서 저녁을 먹은 후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TV에서 '밀수'라는 영화를 찾아 함께 보자고 제안했다. 가족 모두 이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흔쾌히 동의했고 그렇게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영화를 시청했다.
"자녀들이 성인이 돼도 TV를 사지는 않을 것 같다" 양은영 씨와 전미혜 씨가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이유는 TV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씨는 TV가 있다고 해서 가족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2018년 발행된 이소은, 강민지의 논문 '가족의 화로에서 사적 스크린으로? : 가내 TV 시청 양상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컴퓨터나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은 매체로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어 '가족의 화로'로서 TV의 의미가 약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과 함께 TV를 시청하는 경우에도 SNS 등을 통해 또래 친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 시청이 반드시 가족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양씨는 "과거에는 TV를 보면서 같은 주제로 가족들끼리 소통할 수 있어 좋았지만, 지금은 그런 점이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