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부모님이 환자가 되었을 때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아버지의 갑작스런 수술과 퇴원까지 마주한 것들을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오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수요일에 퇴원해도 된다고 하더라, 이후 치료 관련해서 혹시라도 다른 병원에 가게 되면 필요한 소견서도 써 주신다고.” 지난 6일에 응급실로 들어왔으니 병원에 들어온 지 3주가 됐다.
아버지가 갑자기 중심을 못 잡으시고 자꾸 넘어지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게 지난달 이맘때였으니, 온 가족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닥뜨리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고민해 온 시간이 한 달이 넘은 셈이다.
처음에는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 친정 근처 대학병원 신경과를 찾아갔고 응급실로 내려가 뇌 CT와 MRI 등을 찍었다. 다행히 뇌 쪽의 문제는 아니라는 검진 결과가 나왔지만 이후 별다른 검사 없이 집에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는 거동이 더 어려워졌고, 며칠 후에는 아예 걸음을 떼지 못하게 되셨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챙겨 아빠가 다니시던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정기적으로 인지 검사와 관련한 약 처방을 받고 계셔서 주치의라 할 수 있는 분이 계셨던 게 다행이었다. 문진과 촉진 등 긴 시간 진료를 봐주신 선생님은 신경과적인 소견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검사 결과를 봐도 뇌출혈이나 혈관 이상은 아니에요. 현재 아버님 상태를 보면 따님이 물어본 파킨슨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추 부분에 문제가 생겨도 이럴 수 있는데, 소견서 써드릴 테니 빨리 경추 MRI 찍고 와 주세요.” 다음 날 주치의가 연결해 준 영상의학과로 가 MRI를 찍었고, 검사 결과를 가지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경추에 문제가 있네요. 지금이라도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수술이란 소리에 가족 모두 당황해하며 ‘일단 집으로 돌아가 의논을 해 보자’,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알아봐야한다’ 등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주치의는 “다른 말 필요 없이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가세요.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환자분이 더 힘들어져요”라며 빠르게 병원을 연결해 주셨다.
응급실에서 다시 필요한 검사를 받았고, 이후 정형외과 담당의가 내려와 바로 입원하고 수술 날짜를 잡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복잡한 수술은 아니지만 전신마취를 하게 되며, 대부분은 좋은 경과를 얻지만 어떤 환자는 수술 후 마비에 이르기도 한다’, ‘일단 수술을 시작해 봐야 하는데 나이가 있으시니 만약의 경우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 등의 설명이 이어지자, 어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에게 수술은 무리’라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시며 자신 없어 하셨다.
큰아버지 등 어르신들도 계속 전화하시며 ‘수술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다’, ‘좀 더 추이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 ‘다른 병원도 좀 찾아보자’ 등의 말씀을 전하셨다. 아버지 역시 응급실에서 나가고 싶어 하신 건 물론이다. 지금 수술을 했을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과 그렇지 않고 이대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가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따져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결국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경과도 좋았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재활도 시작했고, 이제는 지지대를 짚은 채 일어서서 조금씩 발을 떼는 연습을 하신다. 갑작스러운 증상의 발현, 구급차와 응급실, 수술, 입원, 간병 등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치러내며 팔순이 넘은 부모님의 현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제든지 주저앉을 수 있는 나이, 한번 기운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쉽지 않은 때라는 걸 말이다.
부모님의 지금 상태가 별안간 만들어진 것이 아닐 텐데, 짐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더 부지런히 마음을 써 챙겼더라면 상황이 벌어지고 난 후 수습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두 분이 알아서 잘 지내시리라 생각했던 거다. 내가 어릴 때 봐 왔던 부모님처럼 무엇이든 알아서 하시고, 어떤 상황이든 잘 해결해 내시리라고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아빠를 위하여>(석동연 글/그림, 북로그컴퍼니)라는 저자의 실제 경험을 담은 정보 만화였다. ‘아빠가 암에 걸렸다. 위암 판정 후 수술과 항암, 전이로 인한 말기 암 판정, 그렇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이 시간을 만화가 석동연은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다.
“앞으로 병이 어떻게 진행될까?”, “이 증상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등 매번 마주하는 질문들에 대해 딸의 입장에서 기록한 일종의 다이어리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마음에 공감하며 환자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그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더랬다.
‘알고 있으면 덜 당황하고, 알고 있으면 더 필요한 계획을 세우고, 알고 있으면 더 잘 간호할 수 있었을 텐데…’ 저자가 책에서 건넨 이야기처럼 막상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머물다 보니 바로 앞에 일어날 일이 고민이 되어 누구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지금부터라도 찾아보고 공부하며 미리 염두에 두고 대응하면 좋을 것들을 채워가야겠다. 언제든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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