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일본의 중요문화재 '도고온천'에 몸을 담그다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23) 마츠야마 시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3000년의 역사 자랑···1894년 목조건물로 개축
이번 여행지는 ‘도고온천(道後温泉)’이다. 그림책에나 나옴 직한 ‘봇짱 열차(坊っちゃん列車)’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장편 소설 <도련님(坊っちゃん/봇짱)>이 떠오른다. 나는 <도련님>이란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일본 생활 30년이다 보니 자연스레 상식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에히메현(愛媛県)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도고온천 본관 모습과 마츠야마(松山) 시내를 달리는 봇짱 열차의 영상 덕분이다.
도고온천은 에히메현(愛媛県)의 현청 소재지 마츠야마 시에 있는 관광 명소로 3000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1894년에 개축한 '본관'은 1994년 공중목욕탕으로서는 처음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관 외에 별관인 '아스카노유(飛鳥の湯)'와 '츠바키노유(椿の湯)'가 있다. 본관은 2019년부터 수리 공사에 들어갔고, 2024년 12월에 공사가 끝날 예정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歌集) 만엽집(万葉集)에도 등장한다는 도고온천은 효고현(兵庫県)의 ‘아리마 온천(有馬温泉)’, 와카야마현(和歌山県)의 ‘시라하마 온천(白浜温泉)’과 함께 일본의 최고(最古) 3대 온천으로 불린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기대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온천이다. 비록 숙박은 여행사에서 정한 저렴한 호텔이라 할지라도 역사 깊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그것이 온천 마을을 여행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장기 체재하며 소설을 썼다는 문호들의 이야기는 그 공간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별히 팬도 아니면서 이왕이면 같은 공간에 머물러 보고 싶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1890년, 도고온천 마을 초대 촌장으로 취임한 '이사니와 요시야(伊佐庭 如矢)'는 노후한 본관 개축을 추진한다. 마을 주민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사니와 촌장은 “100년 후에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20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894년 드디어 개축의 위업을 달성한다.
그로부터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도고온천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개축에 든 비용은 13만5000엔이었다고 한다. 그 금액이 거금인 건지 적당한 금액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것은 그때 지은 목조 건물이 증개축과 수리를 거치면서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도고온천과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2022년 10월은 아직 코로나로 인한 긴장이 풀리지 않은 때이기도 해서 거리는 그야말로 쓸쓸했다. 관광객이 적어서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는 있었지만, 여행지의 활기가 그립기도 했다.
봇짱 열차가 세워져 있을 거라는 종점으로 갔으나, 운행 중이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츠야마 시를 이동할 때 버스 안에서 운행 중인 열차를 보기는 했지만 타 볼 시간은 없어서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나중에 안내원의 정보에 의하면 딱 우리가 간 날이 정비하는 날이어서 차고에 있었다고 한다.
역사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1시간에 한 번 울린다는 시계탑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슬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안내판을 보니 1시간에 한 번이 아니라 30분에 한 번씩 울린단다.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고 거북이가 움츠렸던 목을 빼듯 시계탑이 움직이더니 키가 훌쩍 커졌다. 이어서 인형들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댄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상을 찍는 팔을 꽉 고정하고 맨눈으로도 그 모습을 담았다. 한동안 동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프로젝션 맵핑보다 좋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프로젝션 맵핑이 그 현란함으로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면, 시계탑은 살짝 미소 짓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인형들의 움직임이 보는 이를 집중하게 했다.
요즘 도쿄 도청 건물은 프로젝션 맵핑으로 장식하여 볼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평일과 다른 영상을 비춘다고 한다. 인간은 참 놀거리, 볼거리를 잘도 만들어 낸다.
시계탑을 보고 난 후,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공사 중인 도고온천 본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사 중에도 온천은 영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붐비는 곳이라 예약이 힘들다고 해서 포기했었는데, 달랑 나 혼자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 본 것이다. 예약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마지막 타임인 밤 10시에 딱 한 장 남았단다.
야호! 예약 성공이다.
역시 무슨 일이든 지레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말품 파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말이다. 룰루랄라 호텔로 돌아왔다. 들어오면서 보니 입구에 온천 갈 때 들고 가라고 바구니와 수건이 세팅되어 놓여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밤 10시가 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그 유명한’ 도고온천 본관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 낮은 천장 아래 직원들 모습이 보였다. 안내받은 대로 나무 계단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칫했다. 1층으로 들어와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지하다! 130년이 되어가는 온천이 지하에 있다고? 그 옛날에 지하를 파서 온천을 만들었어!! 내 머릿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땅을 파서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이야말로 옛날다운 것일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놀랐는지 모르겠다.
계단을 내려가니 자그마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로 소박했다. 역사 깊은 온천이라는 점을 깜박하고 들어간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도고온천 본관’이다. 중요문화재 안에서 온천을 하는 것이다.
현대의 휘황찬란한 시설에 비하면 너무도 소박하지만, 1894년부터 존재해 온 곳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몸을 담그면 감개무량, 그 감동은 갑절이 된다. 안에서는 프로젝션 맵핑으로 온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백로가 온천에 와서 발을 담그고는 나아서 날아간다는 이야기다. 나는 중간부터 봤지만 마침 시작할 시간에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들어오길래 한번 봐 보라고 오지랖을 떨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아이들은 중간에 보는 걸 포기하고 탕에서 나가버렸다. 하하···. 역시 10대에는 자기들끼리 조잘대는 게 더 즐거울 때다. 느긋이 온천을 즐기고 적당한 어둠에 싸여있는 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은 '동백 탕(椿の湯/츠바키노유)'으로 갔다. 화려한 꽃을 테마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니나가와 미카(蜷川 実花)의 작품이 온천 마당을 장식하고 있다고 해서이다.
휘황찬란, 꽃으로 뒤덮인 온천 마당과 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비사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기발함이 나쁘지 않았다. 전통이란,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맞게 발전시켜 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전시는 2024년 2월까지다.
수리 공사를 마치고 새로 단장한 도고온천 본관을 보러 갈 기회를 만들고 싶다. 이번엔 패키지여행이었으나 다음엔 개인 여행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느긋이 봇짱 열차도 타보고 봇짱 당고도 먹으며 도고온천 마을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좋겠다.
※위 포스터를 클릭하시면 지원 페이지로 안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