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되기 위한 실적 뒷거래 전쟁···형평성 어긋나도 백화점은 속수무책
VIP 실적 거래 시 결제 금액 2.5~3%에 거래 혜택 즉시 중단 등 규정 마련에도 제재 어려워 선입금 후 실적 취소·변경 가능해 사기 주의
# 롯데백화점 실적 500만원 구매 원해요. 20~30만원 부족해도 상관없어요. 4% 반영해서 20만원 입금해 드려요. 적립 후 확인하고 입금해 드려요. -A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소비자 A씨
# 신세계 백화점 실적 판매합니다. 그동안 선입금으로 거래 진행했고 신용 있게 적립 완료해 드렸습니다. 제 판매 글도 보시고 신용 확인하시고 선입금 거래하실 분만 연락해 주세요. -B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판매자 B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백화점 우수고객(VIP) 등급이 되기 위한 구매 실적 뒷거래가 횡행해 온전히 제값 주고 VIP가 된 고객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백화점 업계에선 소비자 간 거래를 제재할 근거가 없고 비정상적으로 실적을 쌓는 방식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워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백화점업계가 전년 구매 실적을 근거로 매해 2월 초 VIP 고객을 선정한다. VIP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 연말과 연초가 되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백화점 구매 실적을 사고파는 거래가 급증한다. VIP 등급이 되길 원하지만 실적이 모자란 고객들은 중고 거래를 통해 실적을 등록한다.
백화점 실적이 필요 없는 판매자들은 고가 상품을 구매한 후 실적을 판매해 부수입을 얻는다. 보통 구매 금액의 2.5~3%가량의 금액으로 실적을 판매한다. 예를 들어 500만 원어치의 구매 실적을 10만~20만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백화점이 VIP 실적 집계를 마감하는 연말이 되면 결제금액의 10% 안팎까지 뛰기도 한다.
주로 실적 판매자가 첫 결제 시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로 실적을 쌓고, 결제 변경을 하면서 실적을 구매한 사람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거래한다.
이처럼 VIP 등급이 되기 위해 실적 거래가 이어지는 이유는 백화점에서 제공하는 VIP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주요 백화점이 운영하는 VIP 등급에 따라 무료 주차, 발레파킹 서비스, 라운지 이용, 퍼스널 쇼퍼 서비스, 기념일 및 명절 선물 등이 제공된다.
최근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 3사는 2025년도 VIP 선정 기준을 상향해 실적 거래가 더욱 성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소비자 간 거래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100% 차단하기가 어렵다는 게 백화점 업계의 설명이다.
주요 백화점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부정 매출 적발 시 VIP 혜택 제공 즉시 중단, 다음 연도의 VIP 선정 대상 제외 등의 규정을 마련했으나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주요 백화점 VIP 등급 관련 공지에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타인의 영수증을 구매해 포인트를 부정 적립하는 경우, 고객 혹은 대리인의 구매 정보를 자신 혹은 제삼자에게 적립하는 경우 등 부정 매출로 확인된 매출의 적립을 거절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다.
또한 특정 브랜드에서의 구매 금액이 전체 구매 금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취소 후 재결제 혹은 추후 적립 횟수가 전체 구매 횟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등 백화점 기준상 통상적인 거래와 현저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 부정 매출로 판단해 매출 적립을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상품권, 현금 구매까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규정 위반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개인 간 영수증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고, 백화점을 상대로 속이는 건데 이를 100% 제재하기 어렵다”며 “카드 같은 경우 본인 명의 확인이 되지만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구매한 영수증을 갖고 와서 적립해 달라고 하면 백화점 입장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백화점 실적 거래를 악용한 사기까지 빈번해졌다. 선입금을 받은 후 실적 구매자의 계정으로 직접 등록한 뒤 다시 취소하거나, 변경도 가능해 사기당할 가능성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실적 거래로 VIP가 된다면 예를 들어 백화점 입장에서 온전히 5만원 넘게 구매한 사람에게 사은품을 주려고 하는데 4만원 구매한 사람한테도 사은품을 주는 거지 않나”라며 “제값 주고 실적을 쌓은 VIP 고객 입장에서 기분 나쁘고 백화점이 고객 관리를 통해서 VIP를 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매출 확대를 꾀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본인 신용카드를 토대로 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본인이 구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