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비 9만원 韓 vs 90만원 美···의료 대란 근본 원인은 저수가
경상 의료비 OECD 평균 이하 국민 1인당 진료 횟수 15.7회 OECD 평균 대비 약 2.6배 ↑
# 미국에 자녀를 유학시키고 있는 김정윤 씨(가명·여·48)는 최근 미국에 있는 아들이 보내온 의료비 내역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레르기가 심한 아들이 급하게 응급실을 다녀왔다는 말만 듣고 별일 아니겠거니 했는데 702달러가 찍힌 청구서를 받았다. 김씨는 "알레르기로 호흡 곤란이 와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응급실에 갔지만 정작 병원에 가선 진정돼 5분 정도 의사 상담 받고 스테로이드제 처방 받은 게 다였다는데 90만원이 나왔다"며 "병원이 보험회사에서 받은 진료비 총액은 본인 부담 702달러 포함해 3210달러나 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얼마 전 서울에서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윤정미 씨(가명·여·43)는 다행히 통증이 가라앉아 당일 퇴원했다. 퇴원수속을 하면서 원무과에 낸 진료비는 9만6000원이었다.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급여를 합쳐도 20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근본 원인엔 한국의 극단적인 '저수가 의료비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선 응급실 잘못 갔다간 진료비 폭탄을 맞는다. 그러니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아니면 응급실을 갈 엄두를 못 낸다. 의사는 위중한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에선 어지간한 통증으로도 쉽게 119를 부른다. 119는 공짜인 데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와 치료 다 받아도 본인이 부담하는 치료비는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응급실은 경증 환자로 미어터지고 정작 중환자는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 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저수가 상황에서 병원을 운영하자니 고임금을 줘야 하는 전문의를 많이 뽑을 수 없다. 저임금으로 최대 효율을 올릴 수 있는 '전공의'가 전체 의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된 건 이 때문이다. 아직 학생 신분인 전공의 파업에 '의료 대란'이 벌어지는 사태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저수가 정책의 산물이란 얘기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가 OECD 평균 의료비에도 못 미쳐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뒤에서 두 번째로 부족하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의료비는 2021년 기준 GDP 대비 경상의료비가 OECD 평균인 9.7% 대비 0.4% 낮은 9.3%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17.4% 대비 약 2배 낮은 수치다. 프랑스는 12.3%, 일본 11.3%, 스페인 10.7%, 호주 10.6%, 체코 9.5% 순이다.
의료비가 낮다 보니 그만큼 병원을 찾는 사람 수도 다른 국가 대비 높다. 보건복지부(복지부)가 OECD가 2023년 7월 초 발표한 '보건통계 2023'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회원국 평균(5.9회)의 약 2.6배 높은 수준이다.
반면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 임상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는 5.4명, 노르웨이는 5.2명이었다.
저수가 정책이 한편으론 불필요한 '의료 쇼핑'을 부풀리고 다른 한편으론 고임금의 전문의 대신 전공의 위주의 진료 시스템을 고착화시켜 기형적인 한국형 의료 현장을 낳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만 기계적으로 늘릴 경우 저수가 정책의 부작용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저수가 상태에서 의사 간 경쟁이 심화되면 응급의료 등 보험 급여 의존도가 높은 필수 의료 과에선 더 많은 환자를 봐야 수지를 맞출 수밖에 없고 이는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부채질해 필수 의료 분야 의료 인력 부족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