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란 이유로' 100만 투표권 상실?···"치매 노인 위한 선거 지원 시급"
객관적 투표 가능 여부 판단 '불가능' 투표 독려 위한 제도적 장치도 없어 사전 특정 정당 지지 기술서 등 필요
# A 요양원엔 수십 명의 중증 치매 노인이 거주하고 있다.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곳 요양원 원장은 "치매 노인은 거소투표로 투표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선거권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요양원으로서도 번거로운 투표 신청 과정을 해 가면서 혹시 모를 불상사가 생길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것. 다만 국내 치매 인구가 100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1표라도 소중한 후보로선 대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총선을 앞두고 인지능력이 떨어진 치매 환자의 투표권에 관한 연구 및 정책적 지원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온다. 요양원 입소 치매 노인의 투표권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제도적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요양원에 입소한 장기요양등급 1·2등급 치매 환자의 투표 가능 여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이들 치매 환자는 중증도 이상이기 때문이다. 의사 표현이 가능하지만 거동 자체가 힘든 경우가 대다수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고 요양시설 등에서 거주하고 있다면 시설 내 최소 20명의 투표 희망자 수를 넘을 시 '거소투표'도 가능하다. 다만 보호자가 특정 '정당에 투표하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혹은 대리투표 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등의 불미스러운 일도 생긴다.
과거 요양원 등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요양원장이 치매 환자에게 몰표를 유도해 투표권 행사를 방해한 사례도 있다. 2017년 대선 당시에 치매 시어머니의 투표를 돕기 위해 투표소에 갔던 며느리와 선거 사무원 간 충돌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투표용지까지 훼손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거소투표는 몸이 불편해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를 위해 자신이 머무는 자택 등에서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거동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 병원·요양소·수용소·교도소(구치소 포함)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입소자의 투표권 행사보단 '일상생활 영위'에 초점을 두고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환자의 투표권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와 투표 참여를 곤란하게 만드는 여러 사정이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구에 위치한 B 요양원 관계자는 "치매의 경우 돌봄 부담과 피로도가 큰 만큼 투표권의 행사가 일상생활보다 뒷순위로 밀려 외면받는 경우도 많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각 치매 환자의 상태에 따른 객관적인 투표 방법에 대한 검증 절차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유권자의 투표권 압력 등의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치매 환자 투표권을 위한 제도적 발판 마련 논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고령자 운전면허증 발급 여부 문제와 비슷하다"면서 "치매 환자의 개인별 인지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표로 모든 치매 환자의 투표 가능 여부를 볼 수 없는 이상 판단하기에 예민한 문제"라고 봤다.
이어 "유언장처럼 인지능력이 뚜렷할 때 당사자가 지지하는 정당 정도만 시설 혹은 보호자에게 문서로 남겨 전달하는 방법을 추천한다"면서도 "그보다 앞서 치매 환자의 투표 가능 여부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가 우선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인구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 수는 93만5086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 901만545명의 10.38%를 차지했다. 국가 치매 관리 비용도 20조원을 돌파했으며, 오는 2040년엔 연간 6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