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제게 노래는 '비타민'같은 거예요"···오페라 가수 김선정
국내 초연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국립국장 해오름 2월 22~25일 공연
널리 알려진 <윌리엄 텔>의 작곡가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린다.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번 공연의 주연 김선정씨(메조 소프라노)를 지난 15일 아침에 만났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 후 국내에서 다양한 오페라의 주연을 맡았고, 감각을 건드리는 음악과 실험적 연주로 관객을 만나는 도전적인 실력파 가수다.
-먼저 가벼운 개인 관련 질문으로 시작하자. 오페라 가수 특히 메조소프라노 중 최고의 자리에 계신데, 처음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 어린이 합창단을 했는데 당시에 가곡을 노래하고 들을 기회가 많았고, 조수미, 신영옥 등의 활동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는 무슨 사명감 보다는 환상을 갖고 동경하지 않는가? 나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어머니가 적극 지원해 주셨다. "
-독일 유학을 가셨다. 대개 오페라를 공부하려면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로 가지 않는지.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운명이었다. 어머니의 지인 중 클래식 애호가인 일본인이 계셨는데, 구하기 힘든 클래식 공연을 테이프에 녹음해 주곤 하셨다. 대학 진로를 고민할 때 그분이 독일의 뛰어난 공연 시설을 소개하며 적극 추천하셨기에 큰 고민없이 그곳으로 갔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체코 프라하 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 가수로 데뷔하고 국내에서도 수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것인지 하나만 꼽아 달라.
"국내 공연 중에는 2007년에 주역을 맡은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가 기억에 남는다. 평소 오페라 가수는 서서 노래만 하는 것보다는 연극처럼 그 캐릭터의 삶을 보여주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작품이 그렇게 연출을 했고 꽤 호평을 받았기에 좋았다."
기자가 기억하는 그는 흥행만을 좇는 가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관객과의 호흡에 관심을 갖고 그에 걸맞는 공연을 추구한다. 그의 기억에 남는 <보체크>, <오를란도 핀토 파초> 공연도 중규모 극장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지휘자 구자범과 공연한 1인극 ‘롤라 블라우’ 공연은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 앞 좌석만 판매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도 대형 무대보다는 국립극장을 선택한 국립오페라단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메조 소프라노가 주역을 맡는 오페라 작품 수가 제한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가장 자신 있는, 또는 하고 싶은 배역은 무엇인가? (그는 이 질문에 <장미의 기사>(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와 베르디의 작품 등 여럿을 열거하며, 많은 배역에 꽤나 욕심을 드러냈다. 그 중 하나의 작품만 고르라고 재촉했다)
"하나만 고르라면…쥘 마스네의 서정 오페라 <베르테르>의 샬로테 역을 하고 싶다. 예전에 노래했던 <보체크>에 버금가는 멋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예종 등에서 오랫동안 후학 양성 중인데,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학생들이 너무 조급하다. 지금 당장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고 한다. 노래 인생을 길게 보아야 하는데, 점수 1점, 2점이나 콩쿨의 등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좋아하는 관련 분야를 계발하고 다양하게 폭넓은 공부를 하기를 바란다. 노래에는 그 캐릭터에 가수의 삶과 경험이 살아있는 감정이 담겨야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잔소리로만 듣는 것 같아 아쉽다."
-이제 공연과 관련한 내용을 나눠보자.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이 초연인데, 맡은 배역(이사벨라)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
"주인공인 이사벨라는 시대 배경인 19세기 초의 세계 여느 여인과도 다른 특성을 보인다. 진취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여인의 표상으로 설정된 배역이다. 알제리 의 한 지역을 통치하는 태수의 막강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여인이다. 타의에 의해 태수에게 끌려와 압박을 받음에도 꾀를 내어 오히려 포로로 잡혀 있는 많은 이탈리아인들을 구출해 고국으로 돌아간다.
내가 무대에서 가장 힘들여 부르는 아리아가 ‘당신의 조국을 생각해요Pensa alla patria’인데, ‘우리 고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자’라는 내용이다. 오페라 공연 당시 이탈리아 자국민의 긍지를 고무하는 내용이 들어가곤 했는데, 나도 이 아리아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외젠 들라크루아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더욱 극에 몰두하게 된다."
-로시니는 벨칸토 오페라를 잘 다룬 작곡가이고 이번 공연작도 벨칸토 오페라인데, 벨칸토가 무엇인가?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에 마이크 설비가 없던 시대에, 그것을 대신하여 가수가 부르는 노래의 고저장단 음이 유연하게 그리고 모든 관객들에게 발음까지 정확하고 고르게 들리도록 부르던 방식이다. 결국 사람이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이퀄라이저 시스템 같은 것이다. "
-이번 공연을 위해 아리아를 연습할 때, 힘들거나 각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있는지?
"이번 배역을 맡아 준비하면서 조심스런 부분은 테크닉 위주의 노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을 담지 않은 상태로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데 욕심을 부리면 굉장히 지루해지고, 관객이 금방 눈치챈다. 음악의 강약, 거침과 멈춤 등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에 맞추어 감정선을 잘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이 어떤 점에 관심을 갖고 보면 좋을지, 재미난 부분을 설명해 달라.
"(유쾌하게 웃으며) 관객의 입장에서 어떤 점이 재미있을까, 저도 궁금하다. 우선 무대와 의상 등 화려하고 이국적인 볼거리가 있어 즐겁지 않을까 싶다. 배경이 오스만투르크 지역이었던 알제리이다. 주한 알제리 대사관 직원과도 간담회를 했는데, 그들은 같은 이슬람 지역이라도 튀르키에와 다른 점을 지적하며 꼭 정확히 표현해 달라고 요구했다. 본래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가 상상에 기반하여 이국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기에 예술을 예술로 재미있게 무대를 보시면 좋겠다. 그리고 각각 배역의 캐릭터를 하나 하나 비교하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테너와 베이스 각각의 캐릭터와 아리아도 재미있고 감명깊다."
-지휘자 이든씨도 오케스트라와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하듯 음악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했으니, 캐릭터들 사이의 티키타카를 통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노래, 오페라는 ㅇㅇㅇ이다! 질문에 가볍게 답을 주신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노래는 ‘비타민’이다. 그게 없어도 죽지는 않지만, 삶에 활력을 주지 않나!"
만나기로 예정한 날에 아침부터 비와 눈 그리고 강풍이 거세게 불어 댄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터뷰 내내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올해 봄과 가을에도 일정이 꽉 들어찼다는 김선정 씨. 자신이 맡은 역할을 멋지게 해낼 쾌활한 그를 떠올리며 인터뷰를 마쳤다. (본 인터뷰 진행에 도움을 주신 국립오페라단 김미지 씨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