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감당하기 힘든 월세···'함께 살기' 택한 학생들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월세 60만원 육박 '복불복' 공동 주거 사회적 공간 연장선 돼
현관문을 들어서자 젊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눈에 띈다. 현관문의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에 들어가니 영락없는 20대 대학생의 공간이다. 많은 전공 서적과 화장품, 널려있는 옷가지들, 침대 위의 인형은 방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다음으로 들어가 본 방도 다를 것이 없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 집에는, 20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방이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똑같이 세 개가 있었다.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은, 이른바 '함께 살기'를 택했다. 2023년 2학기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가 약 60만원에 육박했다. 월세에 관리비, 각종 공과금까지 포함하면 학생들은 한 달에 평균 70만원 내외의 주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일부 학생들은 이러한 주거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한 채 살아간다.
지난 11월 26일, 대학에 입학하며 부산에서 상경한 서유진 씨(20)의 집에 방문했다. 저녁이 되자 세 명의 여성은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서 씨는 반찬을 데우고, 한 명은 수저를 깔았으며, 나머지 한 명은 밥솥을 열고 그릇에 밥을 담는다. 자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반찬은 가게에서 사 온 나물과 스팸 구이, 김 등이 전부이지만 둘러앉은 식탁은 어딘가 꽉 차 보인다. 셋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뒷정리도 함께 하였다.
서 씨와 함께 사는 두 명의 룸메이트는 학교 커뮤니티 어플 '에브리타임'에서 구한 사람들이다. 서 씨는 "혼자 살았으면 한 달에 70만원 정도가 들었을 주거비용을 약 30만원 정도로 대폭 줄일 수 있었기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주거는 신분도 보장되지 않고 1인 주거보다 훨씬 불편하지만, 그래도 서 씨는 만족감을 내비치며 "같이 사는 쪽이 돈도 아끼고 외로움도 덜하고 좋아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서로 이름만 아는 정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와 같은 대학에 진학하여 투룸에 거주하게 된 김주성 씨(21)도 공동 주거에 만족감을 보였다. 김 씨는 "룸메이트와 친해진 이후부터는 식사를 함께하고, 게임을 같이하고, 스포츠 경기를 같이 보는 등 '함께'여서 좋은 점들도 생겼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였기에 둘만 같이 있는 게 굉장히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친구와 친해지고 난 후부터는 오히려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외롭고 좋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거 형태는 '복불복'이다. 서 씨의 사례처럼 운 좋게 마음 맞는 룸메이트를 만나면 비용 부담도 적고, 외로움도 적은 만족스러운 주거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한 수면과 휴식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함께 살기'는 혼자 사는 것보다 주거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특히 커뮤니티로 룸메이트를 구해 신분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그 위험도는 더 커진다.
하성준 씨(23)는 입대 전 원룸에 거주하다가 복학 후 치솟은 주거비용에 함께 살 룸메이트를 구해 투룸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만난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샴푸나 로션, 필기구 등 자신의 물건을 계속해서 함부로 사용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하 씨는 공동 주거를 택한 걸 후회하며, "성격도 잘 맞지 않고, 생활 방식도 달라 차라리 돈을 좀 더 쓰더라도 편안하게 혼자 살 걸 그랬다"고 말했다. 짧아야 6개월, 보통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원룸 임대차 계약 특성상 룸메이트와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억지로 주거를 이어나가야 한다. 하 씨의 경우, 같이 살며 절약한 돈의 가치보다, 같이 살며 얻은 스트레스의 크기가 더 커진 상황이 된 것이다.
하 씨는 룸메이트와의 잦은 갈등 때문에, 화장실에 모든 샤워용품을 두 개씩 배치했다. 샴푸도 둘, 린스도 둘, 바디워시도 둘, 심지어 욕실 슬리퍼도 두 켤레이다. 경제적 문제로 발생하는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자 모든 생활용품은 각자 구매하여 자신의 것만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 씨는 "이렇게 모든 걸 철저히 나누기 전에는 생활용품을 사야 할 때마다 돈을 어떻게 낼지 서로 눈치를 보는 바람에 항상 스트레스였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먹으려고 사 두었던 음식을 룸메이트가 먹는 일이 빈번해 그로 인한 짜증이 싸움으로 번질 뻔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씨는 룸메이트와 함께 쓰는 생활비 계좌를 공동으로 개설하여 룸메이트와 각자 매달 5만원씩을 입금한다. 그리고 집에 보관해 둘 음식과 함께 쓰는 욕실용품, 부엌 용품, 청소용품 등은 모두 생활비 계좌와 연결된 카드로 결제한다. 이렇게 하면 두 명이 자신이 쓸 물품을 따로 구매했을 때보다 더 싸기도 하고 집 안의 물건도 줄어들어 정리하기도 편했다. 김 씨는 "완벽하게 자신이 쓰는 만큼 돈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돈으로 인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어요"라고 했다.
서 씨와 두 룸메이트는 저녁을 먹고 밤에 거실에 모여 함께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를 시청했고, 김 씨는 룸메이트와 각자의 방에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함께했다. 하지만 하 씨는 그날도 룸메이트와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의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비용적 부담에 의해 등 떠밀리듯 선택한 공동 주거 공간은 이렇듯 지친 몸을 누일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기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불편한 사회적 공간의 연장선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