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로 확산하는 '디지털 묘지'···"이젠 무덤도 메타버스"

온라인 추모 공간 확산 묘지 관리할 후세 없어 가족 형태 변화가 원인

2024-02-12     김정수 기자
메타버스 플랫폼 업체 '더블유위안'의 가상 추모 공간 /연합뉴스

"캐릭터를 선택하세요. 추모 공원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 홀로 거주하고 있는 김모 씨. 얼마 전 아버지의 5주기 기일을 맞은 그는 메타버스 추모 공원 페이지에 접속했다. 묘지 터 표지판 방향을 따라 마우스를 움직이자 A씨 캐릭터는 가상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석을 클릭하니 고인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생몰년이, 상석을 클릭하자 캐릭터가 대신 묵념했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묘지'가 확산하면서 장례‧성묘 문화가 변하고 있다. '물리적인 묘'가 점차 없어지면서 무덤도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저출생‧고령화 현상으로 한국‧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디지털 묘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직접 산소를 찾아가 성묘했던 과거와 달리 온라인상에 마련된 가상의 추모 공간에서 고인을 모시는 것이다.

메타버스 추모 공간의 경우, 유족들은 아바타 캐릭터를 택한 뒤 온라인 속 고인의 빈소·무덤에 향을 올리거나 꽃을 바치는 식으로 추모할 수 있다. 물리적인 묘는 따로 두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사망 후 묘를 돌봐줄 후손·친척 등이 없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현대 사회는 부모‧자녀 두 세대로 이루어진 핵가족과 1인 가구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수는 750만 가구를 기록해 전체 가구 수 중 34.5%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진 '인구 데드크로스'까지 시작되면서 앞으로 무덤을 관리할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40년 국내 사망자 수는 출생자 수의 약 2배, 2060년엔 4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복 한국토지행정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조상 묘소를 모시는 '성묘 문화'가 기본이었던 사회 통념이 바뀌면서 무덤을 관리할 후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핵가족화, 저출생, 도시화 등도 (묘지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지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웃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장례 기업 가마쿠라 신서에 따르면 일본의 무덤 구매자 중 '묘를 관리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2023년 기준 33.8%로, 전년 대비 4.9% 감소했다. 나머지는 사망 후 묘를 건사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현립 의과대학 연구진도 미혼자 증가와 저출생 영향 등으로 2160년이 되면 일본 내에 156만기 이상의 미(未)계승 무덤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메타버스 형태의 장례·성묘 서비스 론칭을 앞둔 일본 알파클럽 무사시노의 오가와 마코 이사는 "미계승 무덤이 점점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는 10~20년 내로 '무덤의 디지털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정부‧지자체‧민간기업에서 다양한 온라인 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함께 운영하는 ‘e하늘 온라인 추모’ 서비스는 2020년 추석에 처음 도입된 후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추모관에서는 추모 글과 사진, 음성, 영상을 올릴 수 있고 차례상을 차린 후 헌화·분향하거나 지방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2021년 설과 추석 연휴에 각각 24만8732명·30만770명, 2022년에는 각각 28만5445명·21만8249명, 지난해 설에는 19만51명이 온라인 추모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4·3 추모 공간 메타버스 화면 /연합뉴스

메타버스 추모 공간 역시 늘고 있다. 가족 단위로 접속할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대규모 참배를 위한 공공 추모시설도 메타버스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에는 제주 4·3 희생자 추모를 위한 메타버스 사이트가 마련되기도 했다.

국내 상조 기업에서도 온라인 추모 서비스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보람상조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추모앨범', 살아생전 못다 한 사랑의 편지를 띄울 수 있는 '하늘편지', 고인과의 사진을 저장하는 '추억 보관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버 추모관'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상조 기업 프리드라이프도 온라인에서 고인을 기릴 수 있는 '디지털 추모관'을 운영 중이다. 고인 위패나 추모 액자에 새겨진 QR코드를 스캔해 디지털 추모관에 입장하면 고인의 약력과 가족 사항, 묘역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AI 추모 서비스 '리메모리'도 선보였다. 생전에 전용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추모 대상자 영상을 바탕으로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가상 인간을 구현함으로써 사후에도 고인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최재실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한국도 디지털 묘지, 온라인 추모가 확산하고 있다. 그 요인으로는 접근성, 편리성, 가족 형태의 변화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성묘하러 가기엔 거리도 멀고 휴일에 사람이 몰리면 그 일대에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등 접근성이 불편하다"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장례 문화에서도 편리성이 추구되고 있다. 가족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로 변화하면서 생활의 편리성을 따지는 측면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인은 워낙 바쁘다 보니 휴일에도 직장에 간다거나 업무를 봐야 하는 등 봉안시설까지 못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언제 어디서나 풀 수 있다는 게 디지털 묘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거리‧시간의 장벽 없이 추모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 사회에서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온라인 추모 개념은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사이버추모의집'이 최초라고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함께 운영하는 'e하늘 온라인 추모 서비스'보다 먼저 시작됐다"며 "서울시설공단 시스템을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하고, 또 디지털 기술도 점점 발전하면서 온라인 추모 공간이 더 혁신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례 업계 관계자는 "명절 때 반드시 묘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고인의 기일이나 생일 등 내가 원할 때 추모할 수 있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며 "가상공간에서의 추모가 기존 추모 방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있을 때 다양한 추모 방법의 하나로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