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졸업 앞두고 길 잃은 대학생들···'어떻게 살 것인가'

휴학·졸업 유예로 시간 벌기 한계 학교서 배운 내용, 취업 도움 안 돼 전공과 무관한 진로 찾아 떠나기도

2024-02-10     최인범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김건우 씨 자취방 책장. 전공 서적에 든 지식으로는 취업하기 어렵다. /김건우

김건우 씨는 대학교 복학 후 3년간 상도동의 자취방에서 통학했다. 김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요건 역시 모두 채웠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졸업을 1년 미뤘다.

취준생이 된 김씨는 올해 하반기 50여 군데의 기업에 지원했다. 인턴 두 개, 정규직 두 개의 서류 전형에서 합격했으나 최종면접은 모두 떨어졌다. 탈락의 후유증으로 환절기 독감을 앓는 동안 어느새 하반기 공채가 끝나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김씨는 25세로 여전히 취업 시장에서 젊은 나이다. 2023년 9월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897명의 구직자, 대학생, 직장인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 신입사원 입사 적정 나이는 남성 29.4세, 여성 27.6세였다. 지난해보다 남녀 모두 1.1세 오른 결과다.

김씨는 스스로의 상황을 불만족스럽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그는 전공 지식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실생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전공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공 지식으로 취업 준비를 수월하게 하는 학생도 있었다. 천승빈 씨(24)는 대학교 2학년 시절 처음으로 방문했던 일본 도쿄가 좋아 그곳에서 거주하고 싶어졌다. 천씨는 군대에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천씨의 전공은 한문학이었는데 이는 일본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일본어 능력 시험 자격증을 따고 4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낯선 땅에서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결국 그는 도쿄의 IT 기업에 합격했다. 천씨는 졸업을 앞두고 일본에서의 삶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희원 씨(25)는 학문보다는 학생 공동체를 중심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성적 맞춰 들어간 독어독문학 전공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학점도 잘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학생회 활동은 그의 삶을 바꿨다. 사람들의 신임을 얻으면서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이 되었고 이듬해 졸업을 미루면서까지 총학생회 부회장직을 도맡았다.

굵직한 행사들이 끝나고 그는 올해 12월 31일 부회장 임기 만료와 졸업을 기다리고 있다. 학점이 취업에서 족쇄가 되지 않을지 우려되지만 이씨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경험을 학점보다 가치 있는 경쟁력으로 여겼다.

손유라 씨(25)는 두 번의 학사 경고를 받고 졸업할 예정이다. 그녀는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해 미디어학부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에서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손씨는 자유를 찾아 강의실 밖으로 나섰다. 여섯 번의 휴학 기회를 모두 쓰면서 연극, 디자인 등 자신의 관심 분야에 무작정 부딪혔다.

손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극작가이자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아 왔다. 그녀는 졸업을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에 방문하면서 "7년간 찼던 족쇄에서 벗어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손유라 씨의 창작극 '상상력 결핍은 곤란합니다' 리허설 장면 /손유라

박광민 씨(26)는 졸업을 앞두고 갈 길을 잃었다. 미디어학부에 입학한 그는 한때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는 군 전역 후 언론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률은 수백 대 일로 턱없이 높았다. 열정이 부족한 자신이 합격할 때까지 하염없이 준비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박씨는 졸업을 앞두고 영어 회화, 토익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준비하고 있지만 학기를 마무리할 시기라 집중할 수 없다. 그는 문과 학생이 자신만의 기술이 없음을 지적하며 "이럴 거면 이과를 갔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공계 학생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윤지훈 씨(25)는 대학원에 가기를 원하지만 합격 통보를 받지는 못했다. 윤씨는 복학 후 하릴없이 집에 있으며 한 학기를 유급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4학년 1학기에는 평점 4점대로 학기를 마무리하기도 했지만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취업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곧바로 취업할 수 있을 만한 스펙도 쌓아온 적 없던 윤씨는 전공과목을 좀 더 연구하기로 했다. 뒤늦게 연구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자교의 대학원에는 마땅한 자리가 나지 않고 있다. 그는 6개월 동안 더 대학원 입학을 준비할 예정이다. 윤지훈 씨는 본인의 상황에 관해 "내가 쌓은 업보를 청산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한경훈 씨(23)는 방황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씨의 관심사는 로봇이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로봇 관련 방과 후 학교 활동,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4위, 직접 창설한 로봇 동아리 활동, 전기전자공학부 연구생을 거쳐 어느새 그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한씨의 고민은 내년에 입학할 대학원 학위를 석사로 마칠지, 박사까지 이어갈지였다. 걱정이 있다면 혼자 자취를 하면서 무너진 식습관과 건강 정도다. 마치 선택받은 사람처럼 그의 삶의 궤적은 탄탄대로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단순히 "운이 좋을 뿐"이라며 자기만의 기회를 찾아 방황을 겪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