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오픈런'은 명품관만? 이젠 다이소도 당당히!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주부들 사이에 입소문 난 저가 화장품 인기로 대형 생필품 매장이 장사진을 이어가고 있다
'붕세권, 스세권, 다세권'이 인기라는 건 이미 한참 전의 이야기다. 그중 특히 붕세권이 주는 즐거움은 각박한 세상에 작은 위로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역세권에 신축 아파트를 갖진 못해도 추운 겨울 집 근처의 붕어빵 가게는 힘든 하루를 녹여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온갖 생필품의 보고인 다이소와 거의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산재해 있는 스타벅스도 무슨 무슨 '세권'이라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중 저가 생필품 매장인 다이소에는 뜬금없는 줄서기가 유행이다.
명품관만 오픈런? 아니 아니
언제부턴가 부쩍 익숙해진 단어 '오픈런'은 원래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즉, 기한 없이 공연이나 상영을 지속하는 일을 뜻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그것이다. '개장(open)과 동시에 달려간다(run)'는 것인데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매장 앞에서의 개점 질주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다.
아주 고가의 제품이거나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한정판 출시일에는 그야말로 장사진이 펼쳐지곤 한다. 심하면 밤을 꼴딱 새우며 줄을 서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해서 오픈런 알바가 생겨나기도 했다. 설령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일당이 주어지기 때문에 고생스러움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득템한 물건들은 자신이 소장하는 것 말고도 되팔기로 수익을 내는 '리셀러'들이 구매하는 게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갖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 즉 오픈런을 할 일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소문난 맛집에서도 대기 번호표를 받아 들면 입맛이 떨어지곤 하는데 꽤 긴 시간을 줄서기에 할애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랬던 내가 일면 줄서기 즉, 오픈런에 동참했다. 번쩍이는 백화점의 명품관도 아닌 뭐든지 다 있다는 생필품 매장 앞에서.
오천 원짜리 오픈런도 성공은 힘들어
주부들이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는 각종 후기와 제품 리뷰가 심심찮게 올라오곤 한다. 요즘 들어 부쩍 저가 생필품 매장으로 사랑받는 곳에 관한 글들이 많아졌다. 아이디어 주방용품도 아니고 누구나 즐겨 찾는 청소용품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장품이다.
아니! 내 피부는 소중하거늘 비싸봤자 오천원이 상한가인 그곳에서 화장품을 산다고? 하물며 구입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반신반의,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옆 동네 매장을 찾았다. 넓은 매장은 놀랍게도 중국인 여행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계산대는 아예 중국어로 안내문을 비치해 두기도 했는데 밀려드는 여행자들 때문에 직원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문난 그 화장품 매대로 가볼까? 자고로 세상에 싸고도 좋은 건 없다는데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매장을 두리번거렸다. 음~~ 결국 방문 목적은 실패다. 이미 품절이라는 스티커가 야무지게 붙어있고 나는 텅 빈 매대를 그저 손으로 쓸어보고 나왔을 뿐이었다.
신나는 오픈런, 울고 싶은 오픈런
이런 줄서기는 혼자보단 둘이 좋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여동생과 다시 ‘오픈런’에 도전하던 날은 하필 매섭게 바람이 불었다. 다행스럽게 매장은 쇼핑센터 내에 있어서 고생은 덜한 셈이다. 꽤 부지런을 떨었건만 세상에는 우리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넘치고 넘쳤다.
오천 원짜리 화장품에 줄을 서는 경험도 흔치 않다고 생각하니 잠깐의 줄서기는 작은 이벤트처럼 즐겁게 다가왔다. 1인당 1개씩의 조건으로 득템한 화장품을 들고 어찌나 웃고 좋아했는지 모른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후후후. 효과는··· 아직 모르겠다. 그저 나이 든 나의 피부 탓이려니 하고 있다.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이런 오픈런도 있고 수익 창출을 위한 오픈런도 있지만 안타까운 오픈런도 있다. 이른 새벽부터 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줄을 서는 부모들의 마음이 그것이다. 몇십 년 전 아이를 키웠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당시에는 아이가 미열이라도 조금 날라치면 들쳐 안고 언제든지 갈 수 있던 동네 소아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새벽 6시부터 줄을 서도 대기표는 몇십번이 훌쩍 넘어간다니 아이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은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어서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기다랗게 이어진 줄에 함빡 웃는 업체와 울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이 오버랩 되는 하 수상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