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호떡 이야기
[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 피난길 양귀비의 죽기 전 마지막 음식 다양한 재료···K-food 열풍의 주역으로
호떡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다.
동그랗게 빚은 반죽에 달콤한 설탕이 듬뿍 들어간 호떡을 고소한 기름에 구워내는 광경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뜨거운 철판에 둥근 반죽을 떼어놓고 꾹꾹 눌러 납작하게 구워지는 호떡을 보노라면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노릇노릇 잘 구운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반죽 속에 황금빛 설탕 꿀이 주르르 흐르면서 입안 가득 행복함이 밀려온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한 뒤 설탕 소 등을 넣고 둥글넓적하게 구워내는 호떡은 오랑캐 ‘호(胡)’와 우리말인 ‘떡’이 합쳐진 이름이다.
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아랍 사람을 일컬어 호인(胡人)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호떡은 오랑캐인 호인들이 만들어 먹던 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쌀보다 밀이 더 많이 생산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쌀 대신 밀가루를 반죽해 화덕에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었다고 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먼 길을 걸어온 호떡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가 서역으로 전해졌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의 향신료와 식품, 그리고 기술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호떡도 이러한 중앙아시아 아랍권의 식문화에 영향을 받아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를 거쳐 12~13세기 송나라 때까지 거의 1500년이 넘도록 중국에 거세게 불었던 호풍(胡風)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실크로드 개척 이후 유행한 호떡은 특히 상류층에서 즐겨 먹었는데 한나라 말의 영제는 호떡 맛에 빠져 매일 호떡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호떡의 유행은 당나라 때까지도 이어져서 입춘을 기념해 황제가 절에 특별 선물로 호떡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국 피난길 양귀비의 마지막 음식
중국의 절세미인이자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양귀비가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호떡이라고 한다. 서기 756년 안녹산의 난으로 피난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가 배고파하자 신하들이 서둘러 시장에서 구해 온 음식이 호떡이었다.
지금은 길거리 서민 음식으로 알고 있는 호떡이어서 양귀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호떡이라고 하니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당시 호떡은 상류층이 즐기는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밀가루 자체도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고 지금 우리가 먹는 설탕 소가 들어간 호떡이 아니라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황제 일행이 사 먹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급 요리였던 것이다. 호풍의 유행이 불던 당시 중국인들은 호떡에 열광했고 호떡을 먹지 못해 안달이 났을 정도였다고 하니 양귀비는 피난을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K-food 열풍의 주역···입맛 따라 골라 먹는 다양한 호떡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호떡도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간식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고급 호떡이 이제는 한국의 길거리 음식에서 세계적인 K-food 열풍의 주역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호떡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고급 디저트로 변신하기도 하고 덴마크에서는 형형색색 오색의 호떡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도 호떡은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인기 있는 한국 간식거리로 알려져 있다.
밀가루를 기본으로 한 흰 반죽에 계피 맛 나는 흑설탕 소를 넣은 호떡뿐 아니라 반죽도 녹차 가루, 옥수숫가루, 수숫가루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호떡을 만들어 낸다.
또한 호떡 안에 들어가는 소도 설탕뿐 아니라 견과류, 피자치즈, 잡채, 볶음김치 등 다양하게 응용하여 입맛 따라 골라 먹는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호떡의 다양한 변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