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자기만의 반짝이는 빛을 키워 보세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자존감은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미셸 오바마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느낀다

2024-01-30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미셸 오바마가 자신의 두 번째 책에 관해 오프라 윈프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다큐멘터리 ‘우리가 나누는 빛 미셸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를 시청했다. /사진=넷플릭스

“엄마는 참 자존감이 높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딸아이가 핀잔하듯 가끔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 “엄마도 화장 좀 하고 다니지, 옷도 좀 신경 써서 입고.” 아마 친구 엄마들과 다르게 캐주얼한 옷차림에 민낯을 즐기는 내가 마뜩잖았던 것 같다.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입은 건데. 화장은 필요할 때만 하면 되지. 난 화장 안 한 얼굴을 더 좋아해.” 어떤 때는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기도 한다. “정말 예쁘지, 다 가진 것 같지 않아?”, “응 예쁘네, 그래도 난 우리 딸이 더 매력적인데.”, “또, 또, 또 난 아니라니까!”, “네가 갖고 있는 게 얼마나 특별한데. 엄마 눈에는 보이는데. 그걸 끄집어내 즐길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신나는 일인데.”

내 딸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십 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누구나 각자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십 대의 딸아이가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자연스럽게 귀에 박힐 수 있도록 자주 말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러다 어느 날 특별한 순간을 마주하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발현하는 때가 올 테니 말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각자의 빛, 그것을 믿고 나아가는 힘이 자존감이다. 자기를 존중하는 이러한 마음은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판단하게 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독일의 아동 청소년 심리치료 전문가인 우도 베어와 가브리엘레 브릭 베어 박사 부부가 쓴 육아 지침서 <아이의 감정>(북인어박스)에 따르면 자존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존엄과 존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감정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겪는 관계의 경험, 특히 부모에 의한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데, 저자는 자존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부모의 솔직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칭찬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솔직하게 피드백을 전하라는 것이다.

자존감이 있는 아이는 앞으로 당면할 수많은 도전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자신감 있게 드러낼 수 있다. 특히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믿음을 받은 아이는 진짜로 해낸다고 한다.  

‘비커밍’과 ‘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은 팬데믹 전후로 출간된 미셸 오바마의 저서다. 여성으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친구로서,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전한다. /사진=웅진지식하우스

그 좋은 예가 미셸 오바마다. 마침 얼마 전 그녀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작년에 출간한 책 <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The Light We Carry)>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가 나누는 빛: 미셸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넷플릭스)였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부모가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시카고 남부의 흑인 커뮤니티에서 자란 미셸 오바마는 언제나 소수의 흑인 여성으로 스스로 증명해 내고 성취해 내는 삶을 살아왔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 법대를 거쳐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항상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흑인 여성인 자신에게 타당하다는 걸 입증해 보여야 했다.

하물며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을 때도 언론은 그녀에게 ‘성난 흑인 여성’이라고 칭했을 정도니, 많은 여성과 아이들의 멘토로 관심을 받고 있는 현재의 그녀 자리까지 오는 데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그럼에도 자신이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시선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발성경화증을 앓던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흑인이자 노동자 계급이었고 우린 가난하다고 못 느꼈지만 넉넉하진 않으셨을 거예요. 다발성경화증으로 장애를 앓으면서 평생을 고군분투하셨죠.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지만 한 번도 주저앉지 않고 지팡이에서 목발로 보행기로 전동카트로 필요한 도구를 바꿔가며 움직이는 걸 멈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를 탓하지도, 불평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건 ‘넘어지면 일어나서 계속 나아가라’는 것이었다고.

“아버지는 자신만의 빛을 보았고, 저에게도 그걸 가르쳤어요. 내가 나한테 만족하면 누구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없다는 것을요.” 자신의 가치를 믿고 원하는 삶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현재의 그녀를 만들어 낸 동력이 된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말하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의 모습으로 비칠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믿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면 다른 이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빛을 만들고, 그것을 키워 주변을 비출 수도 있다는 게 미셸 오바마가 이번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게다.

때로는 불안하고 답을 찾을 수 없는 큰 문제에 맞닥뜨릴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작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집중해 지치지 말고 나아가 보자는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 나에게도 필요한 조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딸아이에게도 지침이 된다니 더더군다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