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박근혜 사면, 양승태 무죄···이재용 1심 재판 핵심 쟁점은
15년전 에버랜드 판결로 일단락된 승계 경영권 이슈를 불법 승계 의혹으로 둔갑 본지 ISDS 중재 판정 한국 측 변론 분석 정부, 형사재판 탄핵 논리로 엘리엇 대응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판결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적용된 47개 공소 혐의가 1심에서 모두 무죄라는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 달 초로 예고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이재용 회장의 선고 기일을 지난 26일에서 다음 달 5일로 변경해 잡았다. 같은 날 지난 2021년 12월 24일 특별사면 이후 2년 2개월 만에 명예 회복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판기념회가 예정돼 있다.
검찰은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 5년 형을 구형하면서 '불법 경영 승계'라는 결론을 냈다. 검찰의 구형 논거는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며, 이 사건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이며, 범행의 실질적 이익이 이 회장에 귀속됐다"는 것이다.
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의 시작점은 1996년 이건희 전 회장 체제에서의 삼성에버랜드 신주 발행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 2009년 대법원은 주주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무죄로 결론내린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2월 16일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결성된 박영수 특별검사 소속 한동훈 검사(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 이재용 회장에 대한 2차 구속영장에 '지배권 강화를 위해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것'이란 내용을 담으면서 경영권 승계 프레임을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이뤄졌다는 주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열흘 앞둔 2018년 5월 1일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고의적 분식에 대한 조치안을 통보하면서 구체화했다. 당시 금감원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삼성 내부 문건을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출했고 증선위원 5명은 '고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 수사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이던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2018년 7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박영수 특검의 공소를 충실하게 반영한 국정농단 1심과 항소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도 있었지만, 2020년 9월 이재용 회장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이재용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조정하려고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벌였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었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 이뤄졌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11일 상장됐다. 다시 말해 합병 당시 비상장 기업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얼마나 분식해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갈지 미리 계산해 이른바 승계 전략을 짠다는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표현을 빌려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란 지적을 받는다.
묵시적 청탁 → 불법 승계 프레임
참여연대와 한동훈 검사 합작품
양승태 표현 빌리면 '한 편의 소설'
물론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경영권 강화는 법적으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증선위 감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이한상 회계기준원장은 최근 칼럼에서 대주주가 가진 1주식에 대해 1의결권이나 소액주주가 가진 1주식에도 1의결권이 동일한 주식 평등원칙이 적용되는 현행 상법 구조를 언급하며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포함돼 있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주주 대표 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렇게 3년 2개월여간 심리가 진행된 이재용 회장에 대한 1심 재판을 가늠하기 위해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기한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SDS) 중재 판정에서의 법무부 항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관련 문형표-홍완선 형사 판결(배임 유죄)에서의 검찰 주장 △주주들이 제기한 합병무효의 소(삼성 승소) 등 3가지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 2017년 10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는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낸 합병무효소송(2016가합510827)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에 총수의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서 합병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진행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부당 압력 의혹과 관련한 형사 재판은 다르게 흘러갔다. 2017년 6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두 사람에게 각각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2017고합183). 이어 서울고등법원 역시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했다(서울고법2017노1886).
분식 회계를 뜻하는 '시너지 효과 조작'이란 말은 위의 재판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홍완선 전 본부장이 지휘·감독권을 이용해 투자전문위원회 위원 5인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하고 조작된 합병 시너지 효과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위원회가 합병에 찬성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배임을 저질렀다는 것.
반면 여성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한국 정부의 ISDS 변론 자료를 보면, 법무부는 이런 형사 재판 결과를 탄핵하는 논리를 펼치며 엘리엇에 대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법무부는 시너지 조작 논란과 관련해 '제3자의 가치평가들이 주관적이고 차이가 심해 달성 가능한 시너지 효과(약 2조원)를 산정한 것이고 투자위원들도 가정치임을 인식하고 투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가결한 2015년 7월 10일 투자위원회에 참석한 12명의 위원 중 과반수인 8명이 찬성했고 중립은 1명이었다. 즉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기권자 3명이 홍완선 전 본부장과 대화한 5명 중에서 나온 상황이어서 압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법무부는 항변했다.
이건희 생전 '경영권 승계' 일단락
檢 항고 시 10년 재판 족쇄에 갇혀
이재용 "주주 피해 상상조차 안 해"
다만 윤석열 정부의 대응 논리와는 반대로,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이재용 회장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는 경우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예고해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증거가 없더라도 시너지 효과 조작이란 포괄적인 이유를 들어 형사처벌하고 민사책임을 묻는 연금사회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논란은 지난 2009년 삼성에버랜드 대법원판결과 함께 일단락된 이슈다. 당시 양승태 전 대법관은 신주의 저가 발행은 주주배정과 제3자배정을 가릴 필요 없이 법인의 손해와 구분된다는 별도 의견을 내놓으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2014년 5월 10일 이전부터 이재용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삼성미래전략실 주도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이 있었다면서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결국 3년이 넘게 1심이 진행됐지만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잘못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법무부가 오히려 삼성이 승소한 합병 무효의 소 판결을 엘리엇 대항 논리로 활용해 온 실정이다. 신장섭 싱가포르대학교 교수는 "재판 결과가 기소심의위 권고와 유사하게 나온다면 늦었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며 "검찰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겠지만 기업을 10년 재판에 가두지 말고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벌써 8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아온 이 회장이 국정농단과 불법 승계 의혹 등으로 특검과 검찰에 소환된 것만 총 10번이다. 국정농단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83차례 법정에 다녀갔고, 106차례 열린 불법 승계 의혹 관련 재판에도 95차례 출석했다. 서초동 재판에 출석한 횟수만 178차례다.
한편 제일모직 상장 후 2015년 초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집중 매수해 지분을 7.12%까지 늘린 엘리엇 역시 2015년 5월 25일 합병안 발표 후 주가 상승에 힘입어 같은 해 9월 25일까지 167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지배구조를 투명화 단순화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분들께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