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미국인과 독일 나치의 차이 ‘오픈 vs 클로즈’
[김성재의 동서고금] 美 사회 문제 해결 원리 ‘타인에 마음 열라’ 차별 금지법 만든 미국 vs 유대인 배척 독일 직장 내 인종·국적·연령·종교·성별 차별 금지 땡큐·쏘리 일상 배려 문화 전 세계 인재 러시
톰 행크스가 주연한 2022년 영화 <오토라는 남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근교의 한 타운하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에서 타운하우스는 대개 2층 집들이 서로 분리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층 연립 맨션이다.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3층 이상의 아파트와는 다르다.
타운하우스의 일부는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고 일부는 임대된다. 오토가 사는 타운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오토는 타운하우스 단지의 집 한 채를 사서 교사인 그의 부인 소냐와 오랫동안 살아왔다. 거주민 조합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런데 소냐가 세상을 떠나자 오토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괴팍해져 갔다. 그는 결국 다니던 제철 회사에서도 반강제로 퇴직하게 된다. 돌볼 가족도 없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오토는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그가 생명을 끊으려는 순간마다 방해의 손길이 찾아온다. 목을 매려 하는데 이웃으로 이사 온 매리솔 가족이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외국인인 매리솔 가족의 도움을 받고 운전 연수를 해주면서 이들은 친구가 된다.
다른 이웃과 힘을 합쳐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흑인 친구 루벤의 집을 강제 매입해 그 일대를 재개발하려는 부동산 회사의 기도를 막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오토는 세상에 그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마침내 오토는 남은 집을 매리솔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마치고 지병인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난다. 대단한 액션이나 장대한 장면 연출 없이도 이 영화는 예산의 두 배가 넘는 매출을 거두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있다.
영화는 미국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 핵심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는 주문이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자 오토에게 남은 것은 자살을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의 문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게 되자 인생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만약 그가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매리솔을 남미계 이민자라 하여 경계하고 돕지 않았다면 인생 말년에 좋은 친구를 만나는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 하여 루벤과 그의 아내 애니타를 도우려 나서지 않았다면 그와 함께 힘을 합쳤던 많은 젊은이와 친구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과 처지가 크게 다른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열린 자세가 그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윈윈 결과를 가져왔다.
오토의 이야기는 궁벽한 피츠버그의 한 동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개방적 자세가 번영의 기초가 된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건국 초기 미국에는 영국 출신의 이민자가 다수였다. 그 후에는 독일계도 많이 찾아왔다.
기독교 신교를 믿는 이들 백인 주류 사회는 기타 유럽 이민자를 경계했다. 무엇보다 가톨릭 성당에 나가면서 술에 절어 사는 아일랜드계와 라틴계 이민자를 싫어했다. 20세기 초에는 이들의 문화가 미국을 망치지 않도록 한다면서 수십 년간 금주령을 시행하기도 했다.
현재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명문대들이 소수 인종인 흑인을 입시에서 우대하기 위해 시행 중인 인종별 점수 차등화는 유대계 이민자들의 합격 숫자를 줄이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미국 사회는 보다 개방적인 방향으로의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은 그 전진의 발걸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당시 흑인들은 백인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었고 버스에서도 앉아야 하는 공간이 달랐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달라야 했고 많은 경우 투표권도 제약되어 있었다.
독일 중산층이 지지했던 나치가 유대인을 차별하고 몰살해야 마땅하다는 논거를 수십 개 만든 것처럼 미국의 백인 중산층도 마음만 먹었으면 왜 흑인이 차별돼야 마땅한지를 설명하는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차별을 지속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존 F. 케네디를 지지했던 다수의 미국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민권법을 선택해 차별을 금지했다. ‘타이틀 식스(Title VI)’라고 불리는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의 제6편은 미국에서 누구도 인종, 피부색과 출신 국적을 이유로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제7편(Title VII)은 여기에 종교와 성차별을 더해 이런 이유들로 채용과 고용에서 차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1967년에 발효된 연령차별금지법은 더 획기적이다. 40세 이상의 미국인에 대하여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채용, 승진, 보상 등에서 차별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실제 채용 인터뷰를 위해 제공되는 자료에는 대부분 나이에 대한 정보가 누락된다. 나이를 묻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나이가 많다고 존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불이익을 주지도 않는다.
나이가 많으면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고 그것을 불편하게 여긴다거나 나이가 많으니 후진을 위해 길을 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문화다. 그러나 사람의 직무 능력은 나이가 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을수록 조직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만둬야 한다면 조직에는 손실이 된다.
더불어 ‘타이틀 나인(Title IX)’이라 불리는 1972년 고등교육개정법은 교육기관에서의 성적 차별을 금지한다. 이는 민권법 제7편을 확장한 것이다. 오늘날 성차별 금지는 그 개념이 더욱 확장되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에서의 성적 학대, 착취뿐만 아니라 성적 희롱(sexual harassment)을 금지한다.
성희롱의 개념도 매우 포괄적이다. 구체적인 접촉이나 요구 또는 성적 언급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신체 비하적 표현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광범하게 차별을 금지하는 이유는 직장을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직장에서의 품위와 태도가 조심스러워지면 자연스럽게 사회에서도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타인을 보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게 된다. 그것이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땡큐’와 ‘쏘리’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다. 자신이 앞서갔다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지나갈 때까지 문을 잡고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개방성과 낯선 이에 대한 배려가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사람들이 이민 오게 하는 이유가 된다. 현재 미국을 이끄는 다수의 대기업 CEO와 인재들이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미국은 이들은 친절하게 맞이하고 교육시키고 취업시켜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들은 그 능력을 한껏 펼쳐 미국 기업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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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