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주택난"···국토 묘지화 막으니 이젠 봉안시설 포화

봉안시설 증축‧신설 해답 아냐 "결국 또 다른 묘지 양산된 격" 국민 설득할 새 장사정책 필요

2024-01-24     김정수 기자
유골함을 든 유족의 모습 /연합뉴스

"화장을 했는데 유골을 안치할 자리가 없어서 골치 아파요. 그렇다고 부모님 골분을 아무 데나 뿌리긴 싫어요."

장례 방법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면서 과거 심각했던 '전 국토 묘지화'가 최근 봉안시설 포화 현상으로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묘지가 양산된 격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봉안시설은 대부분 포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에 비해 유골을 안치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부산, 울산, 광주 등 지방 지역에 주로 위치한 공공‧사설 봉안시설의 실제 가용 공간은 이르면 2년 이내에 꽉 찰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금정구에 있는 영락공원의 경우 총 8만4191기 중 실제 가용 공간은 3000기 정도만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장군에 위치한 부산추모공원의 경우 가족 봉안묘 1만6338기는 이미 다 찼으며 봉안당과 벽식 봉안담만 각각 4000기, 6000기 정도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유골 6000기 안팎이 추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내년 초 부산 지역 전체 봉안시설이 수용 불가 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에서는 해결책으로 내년까지 봉안담, 봉안당, 봉안묘를 각각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부산시의 고령화 추세를 보면 시설 확충에도 10년 내 또다시 수용 능력 한계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의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부산은 지난 2022년 이미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30년이면 고령인구가 30.1%에 이르고 2040년 38.4%, 2050년에는 43.6%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급증에 화장장도 대기행렬 /연합뉴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난립하던 묘지 문제는 장례 방식이 변화하면서 수그러들었지만 이젠 묘지 대신 봉안시설이 국토를 다 차지하고 있다"며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묘지가 생기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봉안시설 내 공간 부족 현상을 시설 건축과 증설로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고령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만큼 사망자도 급증하는데 봉안시설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봉안시설은 매장을 제외한 유골을 안치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분묘 형태의 봉안묘(납골묘), 건축물인 봉안당(납골당), 탑의 형태인 봉안탑, 벽‧담 형태인 봉안담 모두 봉안시설에 포함된다.

박 회장은 "전 국토의 묘지화를 막기 위해서 매장 대신 화장률을 높였는데 이런 식이면 장법만 달라졌을 뿐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가 묘지가 아닌 납골묘, 납골당 등의 다른 형태로 국토를 차지하는 격"이라며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언급되는 자연장 같은 경우 유골을 뿌린 뒤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면 또 영토를 차지하는 거다. 그건 '자연'장이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시에서는 자연장 유도
정부는 산분장 제도화
장례업계 "다 비현실적"
'리턴 투 네이처' 추진

정부에선 화장 후 분골을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는 장례방식인 '산분장' 제도화를 추진 중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2조 3항에 있는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항은 그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산분장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봉안시설 포화상태에 이른 또 다른 지역인 울산시에 따르면 울산하늘공원 내 봉안 가능 규모는 2만2974기이나 지난해 12월 2만245기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치율이 90%에 달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봉안당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장 시설 이용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울산시는 봉안당 수요 부족분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의 수목장과 잔디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잔디장·수목장 안치율은 10~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목 1그루 당 여러 유골이 안치되는 등의 이유로 유족들의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부산 영락공원 /연합뉴스

지난 2022년 울산연구원이 실시한 '장사시설 수급 전망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연장 방식에 반대하는 이유로 '소홀한 유골 취급(51.9%)'이 가장 높았고 '조상에 대한 예의 부족(22.2%)'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자연에 유골을 뿌리는 행위 자체가 고인을 모시는 게 아니라 버린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일도 회장은 자연장‧산분장 제도는 현재 상황에선 실현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산분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에 뿌리는 거다. 사실 산분장을 잘 안 하려고 하는 이유가 사람 대부분은 자기 가족 골분을 아무 데나 뿌리기 힘들어한다"라며 "산분장 정책이 실현되려면 국민들이 제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무조건 산분장을 외치면 누가 거기에 동참하겠나"라고 토로했다.

박 회장은 '리턴 투 네이처' 운동을 대안으로 언급했다. '리턴 투 네이처'는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꽃씨와 함께 유골을 뿌리는 들꽃장을 말한다. 그는 "지자체에서 특정 지역에 공식적으로 꽃밭을 형성하면 그곳에 꽃씨와 분골을 같이 뿌리는 식으로 본 협회와 '리턴 투 네이처'라는 이름의 단체에서 공동 추진하고 있다. 고인이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라며 "한국은 특히나 조상에 대한 '예'를 중시하는데 특정 구역도 아닌 광범위한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실현 가능성 없는 정책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리턴 투 네이처' 운동은 국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방법을 제안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라며 "아무리 정책을 만들어도 국민들이 호응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으면 그 정책은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연합뉴스

현재 '리턴 투 네이처' 운동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박 회장은 장례 업계에서 운동에 참여 의사를 밝힌 단체별로 책임자를 선별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회에서 보건복지부 정책회의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사태(봉안시설 포화)를 방치하면 후손들에게 죄짓는 거라고 전했다. 그래도 진전은 없다"며 "저출생‧고령화로 갈수록 후세는 줄어들고 납골당 등을 관리할 사람도 줄어들 텐데 대안 모색에 노력도 안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사 방식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선 관련 정책이 제대로 세워져야 긍정적 반응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며 "또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부에 장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장례 분야는 정부에서 뒷전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중요한 분야인데도 국회의원 중 관련 전문가가 없는 게 문제"라고 호소했다.

장례도 웰다잉 영역의 일부
죽음 관한 사전 자기 결정 必

박 회장은 묘지나 봉안시설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시민들도 지적했다. 그는 "본래 묘지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표식이었다. 과거에 일반인들은 묘지를 잘 쓰지 않았고 써도 규모를 작게 지었다. 힘 있는 자들이 본인들 부모‧조상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크게 한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일반 시민들도 점점 흉내 내기 시작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저 집만큼 해야 되겠다'면서 정작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가족이 본인들 과시용으로 '어떻게 하면 묘지(혹은 봉안시설)를 폼나게 만들지' 생각하며 과하게 짓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도 본지에 "체면을 위해 터무니없이 비싼 장례 상품을 이용하는 사치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며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이 뭔지, 장례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사전에 스스로 결정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당연하게 실행하고 있는 장례 절차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 또한 웰다잉의 일부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