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의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소위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돼 은행 창구 직원 금융 지식 생각만큼 높지 않아 금융거래는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하게 해야
하버드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책은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 라는 글로 시작합니다. 그에 의하면 하버드의대 병원의 오진율이 무려 50%에 달한다고 고백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그렇게 오진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통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병원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그는 책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환자라고 합니다. 자신은 잘 모르는데 환자들은 의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테니 그게 겁이 난다는 겁니다. 흔히 병이 나면 의사가 잘 알아서 치료하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의사라고 모든 걸 잘 아는 건 아닙니다. 이처럼 전문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의학사를 보니 우리의 혈액형이 발견된 지 불과 1세기밖에 되지 않았네요. 그러니까 그 이전엔 피가 모자랄 때 동물의 피나 포도주 따위를 혈액 대신 수혈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나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당연시 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러했었나 하며 후손들이 고소를 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금융거래도 그렇습니다. 고객들은 금융회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 갔을 때 모 은행의 간부 직원이 은퇴 후 자금 운용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몇 개 금융상품을 소개하며 자사의 특정 상품을 권했습니다. 수익률이 정기예금 금리의 두 배 정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후 그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창구직원도 간부 직원이 얘기하는 것과 똑같이 상품을 설명했습니다. 그러한 수익률을 낼 수 없다는 게 저의 판단이어서 그 상품을 운용하는 직원을 전화로 연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운용을 담당하는 직원과 통화하며 의문이 풀렸습니다. 창구에서 설명하는 건 과거에 올렸던 수익률이고 올해는 그러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상품 운용자의 솔직한 의견이었습니다.
사실 은행 창구직원들은 금융 지식이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상충할 때는 후자를 우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직원들의 말만 믿고 금융상품을 택해선 안 됩니다.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는 홍콩 ELS 상품이 좋은 예입니다.
은행 직원은 안전한 상품을 권유해 달라는 고객에게 ‘주식보다 안전한 상품이다. 지금 예금 들면 바보’란 말로 홍콩 ELS 상품을 권유했습니다. 왜 창구직원은 이렇게 고객들에게 ELS 같은 위험한 상품을 권유했을까요? 그것은 회사에서 판매를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ELS와 같은 파생상품은 고객이 손해를 보든 말든 은행은 일정한 수수료를 챙기는, 은행으로서는 대출보다 안전한 금융거래입니다.
이렇게 고객을 유인해서는 안 됩니다. 고객이 손해를 보면 은행도 당연히 손해를 분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은행 고위층도 직원들에게 목표액을 할당하고 각종 유인책을 미끼로 판매를 강권하는 사례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시민들이 가전제품을 하나 살 때 먼저 요모조모 기능을 따져 보고 다른 매장에 가서 가격도 비교해 본 후 상품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처럼 금융거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말이 믿기지 않거나 의심이 갈 땐 상품을 운용하는 담당 직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금융거래는 이처럼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남들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가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