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이 낳은 신 풍습? 후세 줄어드니 공원묘지 발길 '뚝'

"주요인은 사회적 통념 변화" 무연묘지 급증에 관리 안 돼 재단법인은 법적 처리 불가

2024-01-19     김정수 기자
무연고 묘지 /연합뉴스

"관리비 체납자에게 전화하려고 보면 번호가 전부 011이고 우편물을 보내면 90%가 반송돼요."

"주인 없는 묘에 쌓인 풀을 베는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워요."

성묘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저출생‧핵가족화 추세가 잇따르면서 가족이 없거나 연락 끊긴 '주인 없는 무덤'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설 공원묘원은 관리비를 내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무연고 묘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김태복 한국토지행정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무연묘지가 증가한 데에는 조상 묘소를 모시는 '성묘 문화'가 기본이었던 사회 통념이 바뀐 게 가장 크다"라며 "핵가족화, 저출생, 도시화 등으로 묘지를 관리할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는 부모‧자녀 두 세대로 이루어진 핵가족과 1인 가구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수는 750만 가구를 기록해 전체 가구 수 중 34.5%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진 '인구 데드크로스'까지 시작되면서 앞으로 무덤을 관리할 사람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40년 국내 사망자 수는 출생자 수의 약 2배, 2060년엔 4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곧 장례식장‧장사시설 경영과 연계되지만 장사 정책에 대한 정부‧지자체‧시민의 무관심으로 방안 마련은 더딘 실정이다.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성묘객들이 설을 앞두고 조상 묘를 찾아 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지가 취재한 결과 방치된 무연묘지를 옮기거나 처리하는 역할은 땅 주인이나 시설 관리인 등 개인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무연고 주검이나 무연분묘 유골의 봉안 기간을 단축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법은 지방정부에서 관리하는 공설묘지에만 해당한다. 법인이 관리·운영하는 공원묘지는 무연분묘에 대한 처리 기준이 없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재단법인 토지 내 무연고 묘지를 정리할 수 있도록 조례나 법령 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단법인 경영자 대상으로도 공설 묘지공원처럼 일정 기간 연고자들의 연락이 두절되면 재단법인 묘지 내에서 옮겨 모실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복 회장은 무연묘지 방치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관리비 체납 분묘 처리에 대한 법적 제도 마련과 시한부 매장제도 폐지라고 말했다. 그는 "무연고 묘지 신고를 받는 사람은 시장‧군수다. 각 시의 시장과 군수가 무연고 묘지를 확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며 "그런데 공설 묘지가 아닌 사설 법인 묘지, 개인 묘지 등은 관리자 본인이 시장‧군수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무연고 묘지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토로했다.

한국토지행정학회가 지난해 8~9월에 사설법인 묘지 관리비 장기 체납 관련 25개 사설법인 묘지(수도권 8개, 지방 17개)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매장 분묘 31만2345기 중 30년 이상 체납 비율은 20.61%(6만4374기), 10년~30년 미만 체납 비율은 10.4%(3만2484기)로 나타났다. 총체납 비율은 31.01%(9만6858기)에 달했다.

김 회장은 "관리비가 장기 연체된 분묘에 대한 정책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묘지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입장에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의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추석을 보름 앞둔 26일 광주 북구 망월공원묘지에서 공원 관계자들이 벌초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해결이 시급한 또 다른 사안으로 '시한부 매장제도의 폐지'를 언급했다. 시한부 매장제도란 일정 기간만 매장한 후 다시 화장해 납골당 등에 안치하는 제도를 뜻한다. 김 회장은 "2000년 당시 매장률이 66%였다. 이에 정부는 화장률을 높이기 위해 2001년부터 매장된 묘지는 15년 단위로 3회 연장 후 60년이 되면 개장해 화장 또는 납골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게 시한부 매장 제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첫 15년이 되는 2016년을 앞두고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가 국회의원 입법으로 기준을 '15년'에서 '30년'으로 연기시켰다”라며 "15년이 되던 당시엔 연고자로 있던 자가 30년이 되면 무연고자가 될 확률이 높으므로 이 제도는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도입의 목표인 화장률은 이미 91%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장사법에서 삭제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단법인 공원묘원 관계자는 "주소지와 전화번호 변경 등으로 연락이 되지 않아 관리비가 연체된 경우가 30% 정도에 이른다"라며 "주인 없는 묘지에 쌓인 풀을 베는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에선 장사법에 따라 개장하던지, 무연분묘 가족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라고 하지만 묘지 운영도 어려운데 파묘를 하는 인건비와 변호사비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냐"고 토로했다.

이어 "관리비가 체납돼도 무연분묘로 인정되지 않고 사설법인 묘지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며 "무연고 분묘를 정리하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증진하기 위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