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죽은 시인의 사회’의 열린 결말, 미 고교서 플레이
[김성재의 동서고금] 세인트 앤드류스 고교 부유층 전유물 공립 교사 처우 열악 학생 자질 하락 학교 폭력 용납 못 해 FBI·방송국 주시 ‘저능 학생 방지법’ 공립학교 개혁 박차
1989년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의 한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의 애환을 다룬다. 웰튼 아카데미라 불리는 기숙학교의 보수적 학풍에 길들어 있던 학생들은 새로 부임한 국어 선생의 참신한 수업에서 강한 영감을 받는다.
로빈 윌리엄스가 배역을 맡은 키튼 선생은 기존의 진부한 생각의 틀을 깨고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펼치도록 학생을 이끈다. 그로부터 학생들은 창의적 인격체의 삶을 꿈꾸지만, 높고 각박한 현실 세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고 결국 키튼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 영화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낭만적 문학동아리 활동을 펼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미국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대서양에서 내륙으로 스며든 델라웨어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웰튼 아카데미의 실제 모델은 세인트 앤드류스 학교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예쁜 호수를 낀 이 보딩 스쿨(기숙학교)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 가운데 하나다. 졸업생들은 하버드, 예일을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과 스탠퍼드, 시카고, 버클리 등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줄줄이 입학한다.
그러나 이 학교의 등록금은 6만6000달러(약 8600만원)를 넘는다. 기숙사비와 식대 등 생활비를 합하면 수학 비용이 연간 1억원은 쉽게 넘어간다. 이처럼 비싼 학비의 보딩 스쿨은 미 전역에 걸쳐 200개가 넘게 존재한다. 물론 이 학교들은 거의 부유층의 전유물이다.
대부분 학부모는 그보다 수업료가 저렴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일반 사립학교나 공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그렇다고 하여 사립학교의 학비가 싼 것만도 아니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 수업료 평균은 연간 1만6000달러(약 2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 전체로 보면 약 3만 개가 넘는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대략 10개의 학교 가운데 한두 개는 사립학교다. 사립학교에 학생을 보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부모는 보다 높은 교육의 질을 얻기 위해 자녀를 사립학교에서 수학하게 한다.
사립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진보적 정당이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일부 주에서는 성경의 창조론을 부정하거나 진화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보수적 가정의 부모가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종적 배경도 작용한다.
그러나 비싼 사립학교의 수업료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게 된다. 우리나라의 시군에 해당하는 카운티에서는 주택 보유세나 자동차 등록세 수입을 통해 공립학교를 운영한다. 소득이 매우 낮지 않은 한 공짜 점심이 제공되지는 않지만 공립학교에서는 수업료가 면제된다.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교재도 공짜로 제공된다.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에게 무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국적을 따지지도 않는다. 비자 등을 통해 합법적 체류 신분임을 증명하면 외국인의 자녀도 공립학교에 자유롭게 등교할 수 있다.
학군이 좋은 지역에서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도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낸다. 대부분 부유한 교외의 높은 주택 가격을 자랑하는 지역의 학군이 좋은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공립학교 교육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교사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우수한 인재가 교직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불법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학생들의 평균적인 자질도 낮아지고 있다. 마약과 범죄 등 가정에서의 문제가 학교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학교의 전반적인 치안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아침 7시를 전후해 스쿨버스와 통학 차량이 오가는 학교 입구에는 경찰 차량이 매일 상주한다. 규모가 큰 학교의 캠퍼스에도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건에 대비해 경찰이 항상 대기한다.
따라서 미국 학교에서 심각한 학교 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나면 가해 학생들은 그날로 수갑을 차게 된다. 시군의 지역 경찰과 보안관, 주 경찰과 심지어 FBI까지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범죄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기가 어렵다. 그 뒤에는 또 지역 방송국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갈수록 저하되는 공립학교 학생들의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저능 학생 방지법’을 시행해 공립학교 개혁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교육의 질이 낮은 학교를 폐쇄하는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교육을 혁신하려 했다.
학교들도 나름대로 학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학교 내에 영재반(gifted)을 운영해 공부에 특출한 능력이 있는 학생을 별도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각 주와 시군도 별도 예산을 편성해 공립 자율고에 해당하는 차터(charter) 스쿨을 운영한다. 대략 전체의 7% 안팎에 해당하는 몇천 개의 차터스쿨이 존재한다. 이들 학교의 교육 수준은 일반 공립학교보다 대체로 높다.
일부 차터스쿨은 교사와 수업의 질이 일반 공립학교는 물론이고 사립학교보다 월등히 높은 경우도 있다. 이들 차터스쿨의 학비도 무료다. 또한, 특목고에 가까운 매그닛(magnet) 스쿨도 전체 공립학교의 2% 안팎을 차지한다. 전국에 걸쳐 수백 개의 매그닛 스쿨이 존재한다.
대학은 이들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를 해마다 수집해 입학 사정에 반영한다. 어느 학교가 어떤 수준의 교육을 펼치는지 오랜 경험을 통해 통계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학교 졸업생을 몇 명 뽑을 것인지 대략적 쿼터를 형성한다.
따라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면 우선 학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차지해야 한다. 학교 숙제를 잘해야 하고 시험도 잘 봐야 한다. 선생님 말씀도 잘 따라야 한다. 교권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통해 학교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해 성적을 내면 장학금을 받거나 더 좋은 학교로 편입해 갈 기회가 널려 있다. 역으로 교육정책이 획일적 기준으로 형평성만 강조하다 보면 교육 본연의 모습을 잃게 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