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보다 집값이 먼저?···화장장 설치 대란, 님비 때문에 '곤란'
혐오시설 인한 집값 하락 우려 주민 대상 인센티브 다양해야 지자체‧주민 간 신뢰 형성 중요
"가족이 사망했을 때 화장장 부족해서 장례 미뤄지는 건 싫고, 화장장 지어주겠다고 하면 우리 동네는 안 된다고 하면 정부는 어쩌라는 건가요."
삼일장이 사일장으로 늘어나는 등 화장시설 대란으로 인해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지자체는 때아닌 '님비'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화장시설 확충 관련 주민 반발로 지자체는 입지 선정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하락이나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이유로 주민들이 장사시설 설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 yard'의 줄임말로, 자신의 주거지역에 위험‧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국내 화장장은 총 62개소로 화장 작업을 위한 화장로는 378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내 화장시설은 서울시립승화원, 서울추모공원 등 총 2곳, 경기도는 수원, 성남, 용인, 화성 등 총 4곳, 인천 내에는 1곳으로 수도권 내 화장시설은 총 7곳이다.
최재실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흔히 국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밀집되었다고 표현하는 수도권에 화장장이 7개소뿐이다. 인구만 보면 화장장이나 화장로 비율도 절반 정도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비율로 따지면 화장장이 11.2%밖에 안 되는 거다. 화장로는 국내 총 378개 중 수도권은 102개로 26.9%밖에 안 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분이 삼일장을 못 하고 사일장, 오일장을 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장례를 4일 이상 지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한 민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기 지역은 경기도 내 화장장이 서남부에 몰려 있어 구리, 남양주, 양평, 이천 등 동북부 지역 주민은 강원도까지 '원정 화장'을 다니는 사례도 잇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는 여러 차례 화장시설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주민 반발로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천시는 2019년부터 화장시설 설치를 추진해 100억원의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후보지까지 확정했지만, 인접한 여주시와 갈등을 빚는 등 인접 시·군, 지역 내 갈등과 반발, 주민감사 청구 등으로 인해 지난해 9월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앞서 가평군도 지난 2020년 구리, 남양주, 포천시와 공동으로 관내에 화장시설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주민 반발이 거세 유야무야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화장시설 공급이 시급한 수도권에 화장장을 설치하려고 해도 주민들이 반대해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각 지자체에서 해당 지역에 일정 인센티브를 제시해도 협의가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주로 집값 하락이나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본지에 "혐오‧기피 시설과 집값이 실제로 연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 편이다"라며 "혐오시설과 가까울수록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고, 거리가 멀수록 그 영향이 점점 줄어든다는 연구가 만연하다. 그래서 대다수 주민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흔히 '님비'라고는 얘기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집값 하락과 그에 대한 반발을 막을 방법은 없다"며 "혐오시설 설치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다른 혜택을 제공해야 지자체‧주민 간 협의가 이루어진다. 정부에서 지역에 지원금을 주거나 투자하는 식으로 별도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혐오시설과 집값 하락을 명확히 '인과 관계'로 따질 수는 없지만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동네는 안된다'라는 입장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제언했다.
최재실 교수는 지역 주민들의 님비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폭 넓은 인센티브 제공과 지자체‧주민 간 신뢰 형성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최 교수는 본지에 "화장장 건립에 따른 피해 보상의 폭을 넓고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도권에서 보상 방식이 가장 다양한 지역은 성남시라고 본다. 성남시처럼 식당, 매점, 카페테리아 등 편의시설 운영권을 제공하거나 장례식장 운영권 제공, 봉안시설 이용 수익금의 일정 비율 제공 등 다양한 형태로 보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도 이천시의 경우 100억원의 인센티브를 제시했는데도 사업이 중단됐다. 주민들 입장에서 만족을 못 한 거다"라며 "단순히 금액이 적어서 불만족했다고 볼 수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센티브 제공 방식도 과거보다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공급 주체인 지방자치단체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신뢰가 형성돼야 지역 주민도 지자체에서 제안하는 정책에 동의하고 협조할 수 있다. 신뢰를 기반으로 갈등이 완화되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결국 지자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