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자금 갈기갈기 찢는 홍콩 ELS “노인에게 절대 팔면 안 됐을 상품”
위험 고지했다 vs 애초 팔지 말았어야 리스크 컸던 3년 만기 옵션 매도 상품 15% 수익 걸고 반타작 제로섬 게임 “금융기관 대표적 모럴해저드 상품” KB ELS 판매 유도 인사 고과 반영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50대부터 많게는 90대까지 고령 투자자의 올 한해만 8조 대규모 손실이 눈앞에 다가오는 가운데 이 사태의 원인이 은행, 증권사의 모럴해저드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판매사가 ‘위험을 충분히 고지했다’는 입장을 뒤집는다. 운이 좋지 않으면 원금의 반타작이 날 수 있는 리스크가 매우 큰 상품을 일반인, 심지어 노후 자금을 짊어지고 온 고령자에게 애초에 권해서도 안 됐다는 것이다. 총 12개 국내 주요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했으며, 특히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부터 금융감독원 조사에 들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키코 사태와 데칼코마니다.
“나 같으면 노인들이 홍콩 ELS에 대해 궁금해하면, 운이 나쁘면 3년 후에 반토막이 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15~20% 수익낼 수 있다. 반토막 위험 괜찮으면 들어가시라. 그래도 들어가시겠냐, 이렇게 묻겠다.”
17일 김병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기관이 전문가도 아닌 일반 투자자에게 홍콩 ELS를 판매하려 시도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최대 20% 수익률을 얻기 위해 마이너스 50%를 감수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관의 불완전판매 여부 조사에서 따지게 될 사안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홍콩 ELS는 홍콩 H지수가 가입 대비 만기 시점에 일정 수준을 넘어야 원금을 보장받는 상품이다. ‘녹인(Knock-in)’과 ‘노 녹인(no Knock-in)’으로 분류된다.
녹인형은 H지수가 만기 때까지 한번이라도 50% 이하로 터치(녹인 발생)하면 최초 약정에서 이자를 주는 계약이 사라지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만기 당시 지수가 가입 당시 지수의 70% 이상이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노 녹인형은 만기 때까지 기초자산 하락과는 상관없다. 만기 때 지수가 가입 당시 지수의 65% 이상이면 약정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홍콩 ELS는 3년 만기 상품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건은 2021년 가입한 상품이다. 녹인형이든 노 녹인형이든 만기 때 가입 당시 지수의 70% 이상은 돼야 모든 가입자가 원금 손실을 보지 않는 건데 2021년 대비 홍콩H지수는 이미 반타작을 넘어섰다. 피해 투자자가 ELS 가입 당시 H지수는 1만2000포인트까지도 터치하기도 했다. H지수는 이날 오후 1시 9분 장마감 기준 5170.63이다. 약 57% 마이너스다.
“ELS는 상품 구조를 살펴보면 옵션을 매도하는 구조다. 미래의 리스크를 안고 현재 수익으로 맞바꾸는 것이다. 때문에 옵션 가격이 비싸다. 현재 돈이 생기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 미래에 운이 좋아야 내 돈이 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수십 배를 잃게 된다. 홍콩 ELS는 옵션을 파는 것을 위주로 구성돼 있다. 옵션을 잘 아는 사람이 취급했어야 할 상품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옵션 매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옵션 매수 포지션이다. 장래의 불확실한 이익을 현재의 값을 주고 구매하는 것으로 무한대 수익이 날 수 있는 반면 손해는 옵션 가격만큼 한정된다. 이 때문에 옵션 매수자와 매도자는 정반대 편에 있으며 제로섬 게임이라 지적된다. 미래 리스크를 가지고 수익을 내고 잃기 때문에 리스크 헤지 용도로 쓰인다.
문제는 홍콩 ELS 판매 연령별로 따져보니 손실 회복이 쉽지 않은 고령층이 많다는 점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한 연령별 잔액 규모의 78%가 50대 이상이었다. 즉 대부분 노후 자금이 이곳에 투입됐다.
KB·한투 불완전판매 여부 묻는 금감원
키코 사태 닮은 금융기관 모럴해저드
ELS 판매 인사 고과 반영한 국민은행
금감원은 홍콩 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최대 판매사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에 대해 불완전 판매 여부를 우선 조사하고 있다. 홍콩 ELS 국내 판매는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5곳, 증권사는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 등 7곳 총 12곳이 취급했다.
판매사들은 위험 고지를 했고 투자자의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한 판매사는 본지에 “시장 니즈에 맞춰 상품을 발행하는데 최소 발행 금액만큼 모집이 완료됐기 때문에 판매했다”라면서 “판매 당시에 H지수가 하락할지 상승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저점이라고 생각한 투자자가 상품을 구매한 것이다. 만약 그때보다 올랐으면 이런 저항이 있었을까”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판매사는 잘못된 홍콩 시장 변화 전망 여부에 대해 “전망은 틀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기관의 전형적인 모럴해저드의 전형이라 했다. 내 손에 떨어지는 이익을 위해 미래에 올 고객의 위험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 도산과 개인 파생을 이끈 키코 사태와도 닮았다. 피해 금액이 20조원으로 집계된다.
“지금 투자자의 90% 이상이 재투자자라면서 상품 구조 다 알고 투자한 투자꾼이라 하는데, 그건 운이 좋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홍콩 ELS는 매우 위험한 상품이고, 특히 2021년 홍콩 ELS는 전문가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상품이다. 위험 상품 팔면 보너스가 달라지니까 당장 몇 백 만원 더 얻으려고 3년 뒤에 일어날 상황을 외면했다. 대표적인 모럴해저드 상품이다.”
실제 국민은행은 ELS 판매 정도에 따라 인사 고과에 반영했다는 정황이 파악됐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이 임직원 핵심성과지표(KPI) 평가 시 주가연계신탁(ELT) 등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을 때 점수 비중이 30~40% 이상 높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지수 변동성이 30% 이상이면 ELS 상품 판매 목표 금액의 50%만 판매한다는 내부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80%로 무리하게 바꿔 영업우선정책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수익이 나지 않아도 수익이 난 것으로 평가했다. 또 고객에게 6개월마다 수익을 돌려주는 식으로 ‘조기 상환’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임직원에게도 같은 수준의 점수를 줬다.
지난해 11월 기준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홍콩H지수 ELS 누적 판매액은 총 19조3000억원이다. 이중 △KB국민은행(8조원) △신한은행(2조4000억원) △NH농협은행(2조2000억원) △하나은행(2조원) △SC제일은행(1조2000억원)으로 약 15조8000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증권사 판매액까지 모두 합하면 홍콩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이 된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만에 1067억원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H지수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만기의 시간은 돌아오고 있고 상반기 만기 도래 총판매 잔액은 10조2000억원, 올 한해 만기 도래 총판매 잔액은 15조4000억원(79.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