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대란에 '저승 가는 길' 3일도 모자라 4일로
사망자 수 대비 화장시설 부족 예약 초과로 장례 기간 늘어져 서울·경기·부산 등 수도권 심각
# 지난달 부산에서 모친상을 치른 김모 씨는 화장을 위해 경남 통영까지 가야 했다. 삼일장 날짜를 맞추다 보니 부산 영락공원 화장장 예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영락공원을 이용했다면 화장 비용으로 12만원 지출 예정이었지만, 결국 총 80만원을 부담하게 됐다.
# 이달 장례를 치른 최모 씨는 발인을 하루 늦췄다. 최씨가 예약한 장례식장에서 서울 화장장 예약이 어렵다며 타지역으로 안내했지만, 그는 운구비용 등을 고려해 그냥 사일장을 치르고 서울에서 화장하기로 했다.
고령화로 사망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화장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장 예약이 미뤄지면서 4일 이상 장례를 치르는 유족이 늘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는 화장로 공급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화장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로, 2028년에는 하루 170건 정도의 화장이 필요하며 2030년대에는 사망자 수가 4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사망자 수는 29만310명, 화장자 수 26만7859명으로 누적 화장률은 92.3%로 나타났다.
2023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 19세 이상 인구가 선호하는 장례 방법으로는 '화장 후 봉안(납골) 시설 안치'가 3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매장(묘지)에 대한 선호도는 △2017년 10.9% △2019년 9.7% △2021년 9.4% △2023년 8.5%를 기록하며 지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연령대별로는 △19~29세 8.5% △30~39세 6.1% △40~49세 5.3% △50~59세 6.2% △60세 이상 13.0%를 기록하며 모든 연령대가 매장(묘지)보다 화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 장례식장의 다수 유족은 화장장 예약 초과로 3일 차 화장을 포기하고 장례 기간을 늘리거나 다른 지역의 화장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1월 발간한 '초고령사회 대응 장사(葬事) 정책의 전환을 위한 입법과제'에 따르면 서울시는 화장로 1기당 수용 인구가 다른 시도에 비해 현저히 많아 화장시설 설치 시급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서울시 화장장 대란에 인접 지역으로 화장 수요가 대거 이동하면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3일 차 화장률이 2022년 2월 77.9%에서 3월 30.9%로 떨어지는 등 급격한 동반 하락이 나타났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수도권 중심으로 화장시설 부족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며 "노령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통계상 사망자가 2030년대 41만명까지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시설 공급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장 대란으로 삼일장 후 바로 화장을 못해 4일, 5일까지 장례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안치실에 모셔두었다가 장례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안치실에 고인을 하루 더 모셔두고 다음 날 장례를 진행하는 이유는 소비자 입장에선 화장장 대기를 위해 빈소를 하루 더 사용하면 그만큼 빈소료를 또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빈소료보단 안치실 비용 부담이 적다 보니 차라리 하루 혹은 며칠 더 안치한 후 장례를 진행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코로나19 당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 대란이 생기자, 협회에서는 화장 회차를 늘리는 방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는 회차를 늘리는 방법으로 화장 대란을 조금이나마 막았으나 그건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라며 "앞으로는 코로나19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어도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토로했다.
현재 정부 대책은 378기의 화장로를 2027년까지 430기로 증설하고 화장시설이 없는 경기 북부는 신설을 준비하는 등 화장장 건설 및 화장로 증설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시립 화장장 증설은 지역 주민과의 협의 절차로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국립장사시설 건립을 계획 중이지만 언제 시행할지는 미지수이다.
박 회장은 "정부 차원에서 확실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화장 대란은 해결될 수 없다. 화장시설 설치밖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며 "수도권의 화장시설 설치가 진척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없다면 2~3년 내에는 오일장까지 일상화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하지만 화장시설 관련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들의 몫이다 보니 협회에서 관련 사안을 정부에 요구하면, 복지부는 지자체에 다시 전달하는 식이라 진행이 더디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승화원에 시범 도입한 스마트 화장로를 2026년까지 매년 7기씩 도입해 일평균 화장 공급을 190건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마트 화장로는 기존 화장 시간이 90분에서 70분으로 줄어드는 등 화장 시간 단축 효과가 검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서울시 승화원에 도입한 스마트 화장로도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현재 화장 대란을 막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