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편의가 낳은 무질서, 대학 시험 기간 24시 열람실은 '혼란'했다
시험 기간 열람실 소음, 쓰레기 문제 많아 직원 부재 시 공공예절도 지켜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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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청세)]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서울 노원구에 있는 S 대학. 일요일인 12월 2일 오후 7시, 한 건물만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조용한 캠퍼스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이 건물 근처에만 많은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해당 건물엔 24시간 개방된 열람실이 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면서 많은 학생이 시험 준비를 위해 커피나 에너지 음료, 간식거리를 든 채 바쁘게 열람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열람실 밖 1층에 위치한 건물 라운지에 들어가자마자 메스꺼운 냄새와 심한 잡음에 당황했다. 대략 8개의 테이블이 마련된 이곳에서 6명의 학생이 작은 원형 책상에 모여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간신히 펼쳐 놓고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잠을 깨려고 라운지에 서서 공부하는 학생과 팀플하는 이들이 중간중간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남은 음식을 내버려둔 채, 2시간이 넘도록 의자에 거의 누워있었다. 한참 웃고 떠든 학생들은 밤 11시가 돼서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그릇에 음식물을 다 모으더니 그 상태 그대로 쓰레기통 위에 올려뒀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종이가 벽에 붙어있었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후 11시 40분. 건물 입구에서 배달원이 케이크를 들고 서성였다. "야 케이크 왔어, 얘들 데리고 얼른 와" 한 학생이 전화하며 입구 쪽으로 빠르게 내려와 케이크를 받았다. 대여섯 명이 복도에 모여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 명은 열람실로 뛰어가 생일자인 친구를 데려왔다. 밤 12시. 생일인 친구가 나오자, 복도에는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말고사를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 속에서 케이크를 들고 다 함께 사진을 찍는 이들의 모습이 동시에 겹쳤다. 이곳이 공부하는 곳인지 떠드는 곳인지 분간이 안 됐다.
"조금만 조용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석에서 팀플을 하고 있던 학생이 케이크를 먹으며 떠드는 이들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죄송하다며 잠시 조용해진 이들은 10분도 채 안 되어 다시 큰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 테이블엔 생크림이 여러 군데 묻어있었다. 15분쯤 뒤 라운지에 들어온 한 학생은 그곳에 노트북을 놓았다가 '앗'하며 다시 물건을 들어 올렸다. 화가 난 표정의 그는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다수의 대학이 학생들의 학업 공간 마련을 위해 24시간 열람실 및 도서관 운영을 재개했다. 학교 측에서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특정 건물이나 층을 개방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평상시에도 열람실을 종일 개방하는 학교가 있지만, 성신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등 약 2주의 시험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시험 기간엔 밤늦도록 공부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기간에 도서관 및 열람실 부근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평상시엔 없던 다양한 문제가 나타난다. 무리를 지어 큰 소음을 내는 학생들,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며 공중도덕을 잊은 듯한 학생들, 그리고 늦게까지 자리만 차지한 채 실제로는 이용하지 않는 학생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최근 각 대학의 기말고사 기간 서울에 위치한 6개 대학을 방문 취재한 결과, 필자는 여러 대학에서 유사한 상황을 접할 수 있었다.
12월 7일 새벽 2시 성북구에 위치한 K 대학. 열람실 문 바로 앞 쓰레기통은 이미 가득 차서 분리수거가 전혀 안 된 쓰레기 섬이 형성돼 있었다. 열람실에서 음료수 컵을 버리기 위해 나온 한 학생은 이를 보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쓰레기통 근처 바닥에 컵을 버렸다. 새벽 4시. 열람실로 들어가는 한 명이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저거 봐"하고 웃었다. 다른 학생은 놀라며 "와 너무 심한데"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학생이 쓰레기통 주변에 쓰레기를 버려놨기 때문이다. 결국 이곳은 쓰레기 섬을 넘어 쓰레기장이 됐다.
12월 17일 새벽 1시 이곳에 다시 방문해 보니, 같은 장소에 쓰레기통 2개가 더 추가돼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새벽 5시 30분, 바닥에 엎어져 있는 통들을 주우며 일을 시작한 청소원은 "학생들이 바닥에다가 내용물이 있는데도 음료수통을 버릴 때가 큰 문제"라며 "통이 다 넘어지고, 쏟아져서 바닥이 끈끈해져 난장판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청소원은 쓰레기통 근처만 화장실에서 밀대를 3번 넘게 빨아오며 걸레질했다.
12월 10일 종로에 위치한 S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열람실 복도 끝에 있는 무인 편의점은 밤을 새워 공부하는 학생들의 참새 방앗간이었다. 새벽 1시. 열람실 복도부터 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복도에 있는 정수기 앞엔 네 명의 학생이 컵라면을 들고 물을 붓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복도 구석에서 라면을 먹기도 했다. 학교에선 편의점 내 약 10개의 좌석을 마련했지만, 시험 기간 많은 학생을 모두 수용하진 못했다. 새벽 2시가 되자 40개가 넘는 컵라면 용기들이 높게 쌓였다. 위태위태한 용기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큰 소리에 학생들은 일제히 그곳을 쳐다봤지만, 이내 각자 라면 먹기에만 열중했다.
평소에도 학회 일정으로 새벽까지 열람실을 이용하는 김민하(25) 씨는 "시험 기간만 되면 학생들이 많아져 쓰레기통이 매번 터진다"며 "학생들이 배달 음식을 먹고 음식물을 그대로 버려 새벽엔 악취도 너무 심하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더한 곳도 존재했다. 3 명의 청소원에게 물어본 결과, 이들 모두 시험 기간 때 가장 심각한 곳은 24시 개방된 건물 안 화장실이라고 답했다. 12월 18일 오전 6시 K 대학을 청소 중이던 한 분께선 "일요일인 어제도 변기가 막혀서 난리라고 연락이 왔다"며 "주말엔 우리가 교대로 1명씩 화장실만 청소하러 오는데도 시험 기간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번은 시험 기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박민정(23) 씨는 지난 학기 시험 대비를 위해 열람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했지만, 건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총 7칸이나 있는 화장실이었지만 모든 칸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가득 찬 휴지로 꽉 막혀있는 칸, 변기에 음식물이 다 묻어있는 칸, 이용 후 물을 내리지 않은 칸 등 이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그는 "많은 칸이 있었는데 제대로 된 칸이 하나도 없었다"며 "화장실 칸을 열 때마다 긴장되면서도 짜증 났다"고 밝혔다. 필자가 방문한 13일 새벽 1시에도 여자 화장실 줄이 길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7칸 중 4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좌석을 잡는 게 어려운 시험 기간엔 열람실 앞에서 '좌석 티켓팅'하는 학생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12월 16일 밤 11시부터 S 대학 노트북열람실은 잔여 좌석이 없었다. 학생들은 문 앞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좌석 예약 시스템을 새로 고치며 자리가 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열람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전체 좌석의 30%가량 비어 있었다. 학생들의 짐만 놓여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나갈 때 퇴실 처리를 하지 않아 공석이지만 이용 불가능한 곳도 더러 있었다. 이윤성(23) 씨는 "시험 기간엔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며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자리만 먼저 등록하고 밥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물론 모든 대학에서 이러한 문제가 전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 내내 경비원이 상주하는 광진구에 위치한 S 대학은 건물 입구 쪽 외엔 많은 인원이 있다곤 상상이 안 될 만큼 조용했다. 성북구에 있는 S 대학 또한 층마다 취식 가능 공간과 재활용 통이 있어 쓰레기 관리가 잘 돼 보였다.
시험 기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은 피곤함에 지쳐있다. 여기에 더해 관리하는 직원조차 없는 새벽 시간대는 이들의 기본적인 공공 예절마저 뺏은 듯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