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올해 은퇴하는 사람에게 드리는 글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남은 생에서 필요한 게 과연 무얼까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것도 재테크의 일종 돈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이제 곧 은퇴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벌써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네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돌아보면 세월이 참 빠르지요.
그러나 앞으로 남은 세월은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보다 더 빨리 지나갈 겁니다. 우리보다 먼저 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한 얘기니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느 날 독서클럽 친구들과 만났을 때 남은 생에서 필요한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다섯 가지로 축약이 되었습니다.
첫째, 건강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으면 절반을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건강은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도 소실되고 관절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는 또 어떤가요. 그동안 나를 지켜오느라고 애를 썼을 텐데 내가 소홀히 했으니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건강에 좀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그리 길지 못합니다. 기대수명이 80세라면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수명은 70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10년간은 골골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삶의 질이 떨어진다면 오래 사는 게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여명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건강수명을 늘리도록 평소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배우자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선 늘그막에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부장제 문화에서 그동안 여성이 억눌려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식이 독립하면 이혼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어느 한 편이 이익을 보고 다른 한 편은 손해를 보는 사이가 아니고 둘 다 이익을 보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갈라설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좋았던 과거는 기억하지 않고 좋지 않은 과거를 기억하며 우울하게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공감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바라는 바를 상대에게 하라는 겁니다. 그게 서로 해로하는 길입니다.
셋째, 어느 정도의 재산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한 건 아니지만 먹고 살기가 힘들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건 바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 그러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질병이 걸리면 돈이 좀 필요합니다. 의료보험이 있더라도 치료비가 수천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생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노후를 위해 돈을 좀 벌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입니다. 씀씀이를 줄일 수 있으면 돈을 버느라고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다른 것에 쓸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공짜로 얻는 것도 있습니다. 따스한 햇볕,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등이 그런 겁니다.
넷째, 할 일입니다. 흔히 퇴직하면 일에서 손을 놓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은 우리의 생명력을 연장해 주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일은 후반생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기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돈을 버느라고 뒷전으로 물려 놓았던,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퇴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19세기 폴란드 시인인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먹고사는 일, 의미 있는 일, 목숨을 바칠 정도로 재미있는 일. 그는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이 드라마가 되고 둘이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일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돈도 있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는데 왠지 마음이 허전할 때도 있습니다. 그건 우리의 내부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현실에선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퇴 후에는 이런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섯째, 친구입니다. 가족이 가깝기는 하지만 가족끼리도 관심사가 다르고 가치관도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께 소통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부부는 성이 다릅니다. 그리고 자녀와는 세대 간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대화가 겉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친구입니다. 친구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해선 안 됩니다. 만날 때마다 옛날의 금잔디 노래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친구들도 피하기 마련입니다. 한편 친구가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서너 명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남은 생에서 필요한 게 이 다섯 가지만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종교를 넣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을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제가 얘기한 건 그저 참고만 하시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한번 정리해 보세요. 그러면 남은 생을 잘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변곡점에 들어선 당신을 생각하며 몇 자 적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좋은 뜻을 펼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