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나날이 성장하는 韓 웹툰 산업···'분업'이 비결
스토리 제작부터 시작 '노블코믹스'가 시발점 작가 노동 환경 개선 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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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청세)]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한국 웹툰은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웹툰 산업 규모는 4배 이상 증가하여 약 1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큰 성장을 보였다.
한국 웹툰은 한국에서 소비되는데 그치지 않고 네이버의 Webtoon, 카카오의 Tapas등 해외 웹툰 플랫폼을 통해 동아시아, 북미 등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웹툰 '마스크걸', '무빙'은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다.
어느 산업이 그렇듯,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웹툰 산업에도 "분업"이라는 비결이 있다. 과연 한국 웹툰의 분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웹툰 분업은 이야기,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웹툰 작가들이 직접 생각해낸 오리지널 스토리를 웹툰으로 만드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다른 작가가 미리 써둔 스토리, 특히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을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웹툰을 노블코믹스(소설을 뜻하는 novel과 만화를 뜻하는 comics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웹툰을 제작하고 있는 안수빈 씨(26)는 "2015년 노블코믹스의 등장이 본격적인 웹툰 분업의 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웹소설 작가가 성공한 스토리를 만들어뒀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만화 자체를 그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스토리가 웹툰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웹툰의 핵심인 만큼, 스토리는 웹툰의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관리하는 웹툰 PD라는 필터를 거친다.
웹툰 PD로 일한 경험이 있는 안씨는 "웹툰 PD는 좋은 작품을 찾아내고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며 "자신의 취향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웹툰 PD는 작가들의 오리지널 스토리, 혹은 웹소설을 보고,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가 무엇인지를 골라낸다.
스토리의 웹툰 연재가 결정되면 웹툰 PD는 콘티 작가에게 작업을 지시한다. 콘티란 스토리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를 간단하게 그려둔 밑그림이다. 인물은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말풍선은 어디에 들어갈 것인지 등 이러한 요소들을 결정하는 것이 콘티이다. 콘티 작가로 일하고 있는 오예슬 씨(25)는 콘티 작업이 그림 콘티 작업과 글 콘티 작업으로 나뉜다며 글 콘티에서는 주로 한 컷(하나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장면)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갈 것인지를 나누고, 그림 콘티에서는 연출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림 콘티는 우리가 보는 웹툰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선은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채로 조금은 과감하게 그려진다. 배경은 보이지 않고 의상이나 표정이 생략되는 때도 있다. 채색도 되어있지 않아 낙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콘티 작가로 일하고 있는 안씨는 이런 콘티 작업을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가독성을 갖추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시선의 흐름이 콘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0촌!', '시월드판타지' 등을 연재한 진돌 작가 또한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요리를 엉망으로 하면 맛없는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재미없는 표현은 좋은 이야기를 망친다"고 밝혔다. 스토리를 콘티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완성된 콘티는 웹툰 PD의 피드백을 거쳐 작화 작가에게 전달된다. 작화는 스케치를 통해 선화(선으로 된 그림)를 완성하는 단계인 만큼, 채색 작업을 위해 깔끔한 선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작화 작가들의 왼손은 Ctrl Z키(뒤로가기 단축키, 그린 선을 지우는 기능) 위에 위치한다. 타닥타닥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온다. 작화 작가들은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선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다. 여러 개의 선이 쌓여가며 점점 인물들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화 단계는 작가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반영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독자에게 가장 먼저 인식되는 것이 인물의 외형이기 때문이다. 진돌 작가와 팀으로 웹툰을 제작하고 있는 히디 작가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차갑고 강렬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 스타일이 서로 다른 만큼 전체적인 스토리에 어울리는 그림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웹툰의 분위기와 잘 맞는 작화 작가가 작품에 담당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알록달록한 색이 더해지는 채색과 명암 단계이다. 선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 기본적인 색을 칠하고, 빛이 들어오는 곳은 더욱 밝은색, 그림자가 지는 부분은 더 어두운 색을 칠한다.
혼자 스토리, 콘티, 작화를 작업하는 개인 작가들도 채색/명암 단계는 어시스턴트(보조 작가)를 고용해 분업하는 경우가 많다. 채색은 단순 작업인 경우가 많기에, 연출적 고민이나 작가의 개성이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된다. 따라서 분업을 통해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한 콘티와 작화 단계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그림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배경도 빠지지 않는다. 배경 작가는 빛의 방향, 분위기, 그림자까지 전부 신경 써 캐릭터와 잘 어우러지는 배경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편집 작업을 마치면 웹툰 제작이라는 긴 연극의 막이 내린다. "그간 고생해서 만든 음식이 마지막으로 손님들에게 나가기 직전 플레이팅을 하는 즐거운 과정이다." 진돌 작가가 편집 과정을 두고 말이다.
말풍선과 대사를 입력하고, 효과를 넣고, 컷의 간격과 공백을 조절하며 더욱 완벽한 웹툰을 만든다. 모든 단계를 거쳐 완성된 웹툰은 PD의 검토를 거쳐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등의 플랫폼에 업로드된다.
현재의 웹툰은 1주 단위로 새로운 회차가 올라오는 주간 연재가 대부분이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한 회차당 컷 수가 점점 많아지며, 한 명의 작가가 1주라는 짧은 시간 내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오씨는 "주간연재와 늘어난 컷 수로 인해 작가들의 몸과 정신 건강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분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면 하나의 회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빨리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돌 작가와 히디 작가 역시 팀 작업이 혼자 작업할 때 보다 작업 시간이 줄어드는 등 부담이 적어 분업을 택하였다고 말했다.
웹툰 분업은 또한 작가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11월 21일 기자와 함께한 6시간 동안 안씨는 35컷(대락 한 회차의 절반)의 콘티를 완성했다.
안씨는 이에 대해 "콘티만 작업하면 되니 작화 등 다른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니 작업의 능률이 올라갔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 스토리를, 연출을 잘하는 사람이 콘티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작화를 만든다. 각자가 자신 있는 부분을 담당하니 더욱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웹툰이 단시간에 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요인이다.
한국 웹툰은 분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여 2021년 새로운 작품을 약 3600개나 제작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들의 노동 환경 문제가 남아 있다.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은 업계 관행상 근로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작업 시간이 아니라 작업물의 양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을 넘어 근무하는 과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더욱 발전해 나갈 한국 웹툰의 미래를 위해 웹툰 산업계는 분업 구조를 안정시키고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