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잃을 판"···간호법·간병비 급여화 두고 '한숨' 200만 요양보호사

의료계 중심 정책에 복지계 비판 "보건·복지 돌봄 영역 재정립해야"

2024-01-03     김현우 기자
요양시설 입소 어르신의 손을 만지고 있는 한 요양보호사의 손. /연합뉴스

# 장기 요양시설에서 촉탁의사의 지도하에 업무를 수행하던 간호조무사. 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사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시설이 간호사를 채용하지 못하면 간호조무사는 일하던 직장을 잃게 되죠. 장기 요양기관 근무 간호사가 전국 3000여명, 간호조무사는 1만5000여명에 달하는데, 이러다 간호조무사까지 다 잃게 생겼어요. 간호사를 더 뽑아야 한다는 건데 조무사보다 평균 임금 50만원을 더 줘야 합니다. 결국 시설 운영비 증가로 이어지게 되고 임금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요양보호사 임금만 바닥 수준을 유지하게 만드는 악법인 셈이지요 -충청북도 청주 A 요양원 원장 B씨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 정책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간호법과 간병인 급여화 논란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을 더디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보건과 복지 간 역할 재정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간호법=간호사 구인난 심화
시설장 운영비 부담 증가로
요양보호사 임금 개선 악화

장기요양업계에 따르면 장기 요양제도로 운영되는 요양원 즉 노인요양시설은 시설 형태마다 인력 기준이 다르지만, 간호사 혹은 간호조무사를 필수로 배치해야 한다.

요양시설에서 간호조무사는 촉탁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간호법이 제정되면 요양보호사가 간호인력 하위에 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간호법 제정 시 요양시설의 경우 기존 촉탁의사 보조 역할을 하던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보조 역할로 포함되어 시설에선 간호사를 뽑지 못하면 조무사를 채용할 수 없게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는 "요양보호사는 노인복지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해 자격을 취득하고 요양시설과 재가시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신체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간호법에 요양보호사가 포함되면 간호사의 통제를 받게 되고, 권리와 자기 결정권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한 요양보호사 사기 저하와 사회적 인식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영이 통합 요양보호사중앙회 사무국장은 "간호법은 절차상 문제와 단체 간의 이해 충돌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호법 제정을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는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단체로 간호법 철회를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A 원장은 "간호조무사를 고용했던 장기요양기관에서는 간호사로 인력을 변경하며 인건비 지출이 늘 전망"이라며 "이는 시설장의 운영비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진행하고 급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받는 시설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맞춰 급여 일정 비율 이상만큼 인건비로 지출하고 나서야 남은 일부 비율 안에서 이익을 챙긴다"면서 "결국 장기 요양기관은 인건비가 늘수록 운영비로 사용될 금액이 줄어들게 되는 구조다. 시설장 운영비 부담 증가는 결국 최저시급을 받으며 고통받는 요양보호사 임금 개선을 더디게 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대한간호협회(간호협회)는 본지에 "간호법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업무범위는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다"며 "간호조무사에 대한 간호사 지도권도 현 의료법과 동일하다. 따라서 간호조무사 해고 후 간호사를 의무 채용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간호협회는 지난 6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기요양시설 간호 돌봄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 등 제도적 장치마련과 정부나 지자체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인력이 장기요양기관에 정착할 경우 이용노인의 질병 예방, 합병증 저하로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의료사고와 오류 감소가 의료서비스 질 개선과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간호인력 투입으로 이용노인의 노후 관점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야만 수급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 간병비 급여화까지
간호사+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통합간병 서비스' 키우면 되는데...

 

정부는 2015년부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통합서비스) 시범 사업을 도입해 간병비 부담 완화에 나섰다. 한 달 간병비가 약 400만~500만원 수준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사업은 8년이 넘도록 시범사업 상태다. 이 상황에서 간병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겠다는 내용의 '간병비 급여화' 정책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

통합서비스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재활 지원 인력(요양보호사), 병동지원 인력(환자 이송 담당)이 환자의 간호와 간병을 맡게 한다는 취지의 제도다. 의료법상 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의료인이 아닌 간병인과 환자 보호자는 병실에 상주해 환자를 돌볼 수 없다.

통합서비스를 이용하면 간병비는 약 411만원에서 60만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통합서비스 인력이 환자 간병까지 맡아 보호자는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입원료를 일부 부담해 보호자는 통합서비스 입원료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간병비 부담을 덜기 위해 간병인 급여화를 선택한 모양새다. 돌봄 인력 중 국가자격증으로 운영되는 요양보호사를 활용한 간병·돌봄 난을 해소할 방법이 있었지만, 자격증이 없는 간병인 비용을 급여화하겠다는 정부·국회 정책 방향에 장기요양업계에선 연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상 간병인은 자격증이 없고 대부분 의료기관인 요양병원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장기 요양법에 따라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국가가 부여한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국가 자격증이다. 장기 요양법에 의해 운영되는 비의료기관인 요양원에서 근무한다. 돌봄 대상도 요양보호사의 경우 장기 요양 등급을 판정받은 수급자로 한정되어 있다. 

통합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관계자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간병인의 80%는 외국인 근로자인 현 상황에서 요양병원 내 무자격 간병인 대상 월 급여제 시행은 현재 요양시설과 재가 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와 요양보호사 지망생에게 절망과 자괴감을 준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간병비 급여화를 올해 7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10개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1차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2027년 본 사업으로 전환해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의료계에선 간병 급여화로 가기 위한 선제 조건인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 재정립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각각 별개의 법률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지만, 서비스 영역과 기능에 있어선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역할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의학적 치료와 요양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입원시키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 전문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요양시설은 가사 활동 지원 또는 간병 등 생활 속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입소시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요양병원의 고도 환자는 약 30%를 차지한다. 이를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요양원의 노인 장기 요양 등급 1~2등급 환자는 요양병원의 고도에 해당하는 데 이들은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반대로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환자는 의료 처치와 간병 필요도가 낮다. 이들은 생활시설인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화로 인해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환자의 요양병원 쏠림에 대한 우려가 있다. 최대한 요양보호사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제도화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며 "병원과 요양원의 기능 재정립이 이뤄지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정부가 이번 기회에 나서 논의의 장을 마련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를 포함한 보건복지부 장기 요양 법정 단체는 간병비 급여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권태엽 한노중 회장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국민편의 제고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간병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재원 지출을 강요하는 행위이며 같은 돌봄 인력인 요양보호사를 말살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